문득, 찬란한 봄이 떠나가는 시간에 있음을......

by 밤과 꿈

토요일 온종일 내린 비로 예년보다 서둘러 봄이 떠나가고 있다. 부활절 아침 서부간선도로에서 차창으로 보는 안양천 벚꽃길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화사한 자태를 뽐내던 꽃이 지고 연두색의 이파리가 싹을 틔우고 있었다. 물론 개화(開花)는 봄을 알리는 전령이었고, 비로소 봄은 그 깊이를 더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봄의 전령이 요란하게 봄을 알리고 자신에게서 사위어 가는 봄의 기운을 뒤따라온 본진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아 있는 봄의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머지않아 봄은 여름에게 길을 내어 주고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언제나 아름다움은 우리 곁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 같다.(부디 우리의 욕심이 만드는 착각이기를 바란다.) 그처럼 찬란한 꽃의 시간이 저물어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순간이다. 아쉬움이 지나쳐 서럽다는 생각조차 하게 된다.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그러나 살아가는 시간 속에 비워지는 것이 있으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 또한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서러움까지도 우리는 견딜 수 있다.

어머니께서 3년 전 딱 이맘때에 가족의 곁을 떠나가셨다. 그때는 아직 봄의 전령이 찬란한 자태를 한창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떠나간 빈자리를 대수롭지 않은 일상으로 메우며 그럭저럭 살아가기에 봄빛이 언뜻 산란하는 서러움을 온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아버지께서도 따뜻한 봄날에 스스로 서러운 걸음을 내디뎌 가족의 곁을 떠나가셨다.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동화작가 정채봉이 생의 마지막 시간에서 맑은 마음으로 쓴 '엄마'라는 시다. 꽃잎을 흩날리며 솔솔 부는 봄바람 사이로 바라보는 푸른 하늘이 서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는 대신 서러움을 껴안고 스스로가 시간의 저편으로 떠나갔다.

생각해보니 나도 아내도 봄에 태어났다. 아내와 내가 태어나는 시간에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 간 생명도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셨을 때 시간 속으로 들어온 생명도 있었을 것이다. 기운 달이 차고, 찬 달이 기울어가듯이 비움이 있으면 채움이 있는 법.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다.

이제는 날이 갈수록 신록의 푸르름이 더하고, 이내 생명을 희구하는 아우성으로 가득할 여름을 맞이할 것이니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광휘를 잃고 떨어지는 꽃잎을 아쉬워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시간을 생각하며 서러운 마음도 접어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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