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하는 교회의 원로 장로님 한 분이 일요일에 돌아가셨다.(개신교식 표현으로는 소천(召天)이 되겠다.)
향년 94세에 이르렀으니 망백(望百)의 나이를 지났지만 흔히 천수(天壽)를 누렸다고 말할 만하다. 아흔을 넘긴 연세에도 직접 차를 운전, 교회에 오시던 장로님의 모습이 선하다. 최근에 허리에 이상이 있어 잠시 힘드셨던 것을 제외하고서는 장로님의 강건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오히려 때 이른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로서는 사람의 생사를 짐작할 수 없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
어제 오후에 문상을 다녀왔다. 아직 저녁 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코로나의 여파로 장례식장이 썰렁했다. 그동안 간병으로 힘들었을 권사님에게 들으니 장로님께서는 편히 주무시다 밤 사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에 같이 있던 다른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 잘 믿은 사람은 마지막도 은혜롭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신앙생활을 잘한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생명이 다하는 순간에도 고통을 주시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아내가 많이 속상해했다. 장모님께서 지금 암으로 투병 중이시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아내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살아오셨고, 당신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만큼 살겠다"라는 믿음으로 밝게 생활해 오셨던 장모님께서 최근에 고통으로 조금씩 무너지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는 장모님께서 전화로 "빨리 하나님께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라고 아내에게 말해 아내가 많이 심란했었다.
이 밤에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란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주인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일찍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되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얼핏 들어보았을 창세기에 나오는 사람의 타락과 낙원 추방에 관한 성서 내용이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바꾸어 말하면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사람의 이해에서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의 이해에 맞추어 하나님을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신앙'이라고 믿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사람의 이해에 적용하는 철저한 '불신앙'을 뉘우침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거의 유일한 순간은 사람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단독자로서 자신을 찾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의 내용이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던 사도 바울이 간구로서 하나님께 받은 응답이다.
죽음이라는 약함의 절정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것이니 그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가 부족함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원로 장로님의 고통 없이 평온한 마지막 순간은 장로님께서 타고난 지복(至福) 일뿐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믿는 은혜는 기복의 차원이 아닐 것이다. 기복 신앙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사고에 맞추고 은혜를 구한다면 삶의 어떤 순간에서나 죽음 앞에서도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것을 기억할 일이다.
"내 은혜가 (이미) 네게 족하다"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