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말이 슬프게 들리던 날

by 밤과 꿈

지난 수요일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해마다 생일 아침이면 아내는 장모님께 전화를 한다.

그리고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진심을 담아 장모님께 생일을 맞이하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된 듯 해맑은 목소리로 장모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에도 행복에 차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

그런데 금년에도 어김없이 장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아내의 모습은 예년과는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장모님께서는 2년 전 유방암 3기의 상태에서 고령으로 항암 치료도 거부한 채 허락된 시간의 끝을 기다려 왔는데, 최근에 상태가 악화된 데다가 기력이 많이 약해져 병원에 입원해 검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검진의 종합적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전신으로 암세포가 퍼진 상태라는 예측을 의료진으로부터 전해 들었으니 아내의 슬픔이 오죽했을까.


팔순이 지난 연세에 항암 치료를 감당하기에 무리인 것도 있었지만 "남은 시간을 무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만 살겠다."는 장모님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또한 20대의 어린 나이에 40대의 가난한 목사와 결혼,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지켜온 장모님의 신앙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아내는 장모님과의 추억을 쌓기에 분주했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장모님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내가 바랐다. 그것은 나 자신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어머니와 7년 동안의 시간을 함께 했기에 그 시간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한 7년의 시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를. 함께 한 시간의 추억이 있는 한 어머니는 마음속에서 영원히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아내도 장모님과 함께 한 시간의 추억으로 장모님께서 떠나간 허허로움을 이기고 그 시간을 삶의 중심으로 삼길 바랐다.


생일날 아침 아내는 장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슬픔 감정을 참고 있음이 역력했다. 눈물을 애써 참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하고 목소리의 톤을 높여 두 번이나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끝내 울음을 참았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금요일인 어제 낮에 퇴원 수속을 밟으면서 장모님의 상태를 알려주는 종합적인 검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온몸으로 전이된 암세포 중 심각한 폐의 상태는 폐의 80%가 암세포로 뒤덮인 상태라는 것, 장모님의 기대 여명이 1개월에서 길게 보면 3개월이라는 진단이었다.

이제는 슬픔을 넘어 장모님의 가시는 마지막 여정을 잘 배웅해 드리는 것이 중요한 시간일 것이다. 남은 시간 동안 암세포는 급속도로 퍼질 것이고 장모님께 닥치는 극심한 고통의 순간들을 진통제로 달래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모님과 아내 모두에게 즐거움이었던 추억 쌓기는 더 이상은 힘들 것이기에 아쉽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매년 아내의 생일에 들을 수 있었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 자식으로서 오직 한 가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남은 시간 장모님께서 많이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