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은 인생의 벽을 만나게 됩니다. 그 벽은 견고한 데다 사방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어 벽을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옥죄어 오는 벽 앞에 누구나 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의 좌절을 견디기에는 그 벽이 버겁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벽을 앞에 두고 짐을 나눌 대상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니, 애당초 그 벽은 홀로 감당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갈수록 내면의 고독에 빠져 존재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어지고,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만나게 됩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의 대부분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전혀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가 당사자로 하여금 소중한 생명의 불꽃을 끄도록 합니다. 그렇다고 극단의 선택을 한 당사자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틀림없이 타인에게는 별 것 아닌 문제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벽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선택에 이를 정도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일생동안 최소한 한 번의 벽을 만들고 살아갑니다. 평생을 살아도 벽을 느낄 기회가 없었다면 축복받은 인생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개인적인 문제이든지, 가족 간의 문제이든지, 또는 사업적인 문제이든지 간에 우리 모두는 상처와 실패를 통해 자신의 벽을 쌓아가게 됩니다.
소설가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에는 박은자라는 무명 가수가 나옵니다. 소설 속 화자의 어릴 적 친구로 "유행가와 철길과 죽음이 그 애의 등을 떠밀어서 은자는 자꾸만 세상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라는 소설 속 표현처럼 부친의 사망 후에 집을 떠나 변변한 인기곡 하나 내지 못한 무명 가수의 삶을 애면글면하면서살아온 은자 또한 얼마나 많은 벽을 맞닥뜨리면서 살아왔을까요.
아마도 그녀가 부르는 노래임에 틀림없을 '한계령'이란 노래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은자가 살아온 삶을 짐작합니다. 은자가 일생동안 경험한 삶의 애환과 그녀가 허문 벽이 쌓이고 쌓인 노래가 그녀를 말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을 잉태한 노래인 양희은의 '한계령'의 가사입니다. 소설 속에서도 가사의 일부가 나오더군요. 이 노래의 주인공도 벽을 지니고 살고 있었나 봅니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오른 산이 그에게 말합니다.
울지 말라고, 잊어버리라고, 그리고 산을 내려가라고, 살아가라고.
지금도 살아가면서 높고 낮은 벽들을 만들고 있을 우리에게 위로가 될 강은교 시인의 시 '사랑법'의 한 구절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