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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pr 29. 2021

유쾌한, 그러나 아쉬움도 남는 전시회

- 필립 콜버트(Philip Colbert)展을 보고


"내가 랍스터가 될 때, 나는 예술가가 된다."

                                                 - 필립 콜버트


Labster Shark, 브론즈에 아크릴과 래커, 2020년


전시의 개요


 코로나로 인해 가장 위축되었던 것 중 하나가 공연 및 전시 분야일 것이다. 수용자 입장에서도 일 년 이상 예술 현장을 찾아 관람할 생각을 못하다가 비로소 찾은 것이 3월 13일부터 5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필립 콜버트(Philp Colbert)' 전시회였다.

 전시 기획사에서 제공하는 프로필에 의하면 필립 콜버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최고의 팝 아티스트로서 그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 패션 등 폭넓은 장르의 대중 예술을 창작"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프로필의 설명과 같이 필립 콜버트의 활동 영역은 어느 한 분야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을 국내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Boar Hunt, 캔버스에 유채와 아크릴, 2018년

 그의 그림에서는 아디다스, 나이키, 코카콜라 등 상업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비트코인, 컴퓨터 창과 SNS의 아이콘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들 이미지들은 이미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필립 콜버트의 그림을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미 친숙한 이미지를 그의 그림에서 만나게 될 때 대중들은 친숙하고도 유쾌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필립 콜버트의 '예술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 랍스터의 애니메이션적인 캐릭터는 마찬가지의 친숙함으로 그의 그림에 녹아들게 된다.

 필립 콜버트는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의 명화를 자신의 그림 속에서 패러디하는 또 다른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Bedroom In Arles, 캔버스에 유채, 2020년

 이와 같은 패러디는 그의 조각 작품에서도 잘 표현되어 남성 소변기를 작품화한 마르셀 뒤샹의 '샘'의 이미지를 차용하는가 하면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리스 조각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Lobster Fountain, 브론즈에 아크릴과 래커, 2020년
Lobster Fighting Minotaur, 대리석, 2020년

 특히 필립 콜버트는 이번 한국 전시회를 위해 한국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요즘은 미디어 매체를 이용한 '미디어 아트'로 개념이 정리되고 있다.) 백남준을 기리며 헌정 작품을 제작, 전시하고 있다.

Lobster TV Robot, 캔버스에 유채와 아크릴, 2021년

 한편, 필립 콜버트가 제작한 '미디어 아트' 작품도 전시, 상영되고 있었지만 요즘의 미디어 아트가 이미 복합 매체를 활용한 미디어 환경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순 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필립 콜버트의 미디어 작품은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Welcome To Lobster Land, 영상, 2019년


팝 아트의 개념과 그 적용에 대하여


 필립 콜버트의 예술에 대하여 전시 프로필에서는 팝 아트로 그 경향을 설명하고 있지만 '팝 아트'의 발생과 개념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55년 미국의 젊은 화가 재스퍼 존스는 미국의 성조기를 그림의 소재로 삼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애국이 미국 사회의 큰 가치였던 그 시대에 국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은 일종의 신성모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스퍼 존스의 성조기 작업을 팝 아트의 시초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어서 팝 아트는 카툰(만화)의 이미지를 회화에 도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에 이어 코카콜라, 마릴린 먼로 등 대중적이고도 상업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회화에 도입한 앤디 워홀에 이르러 팝 아트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팝 아트의 등장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저항 문화와 대중문화의 지배적인 경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후 신장된 국력에 힘입어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성장한 미국, 특히 뉴욕의 추상 미술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팝 아트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팝 아트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이미지를 도입함으로써 미술이 어렵고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지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한편 영국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향의 미술이 등장했지만 미국과는 독립적으로 탄생한 것으로 미국의 팝 아트가 가진 저항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매스 미디어 형상에 대한 관심에 의한 것으로 데이비드 호크니, 리처드 스미스 등의 화가들이 이에 참여했다.  

 그런데 전시회 팸플릿에 의하면 필립 콜버트를 앤디 워홀과 관련지어 언급하고 있다. 팝 아트의 유래에 비추어 이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팝 아트가 저항 문화라는 시대적 상황과 관련되어 발생했다면 필립 콜버트의 작품에는 저항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대중 매체와 대중적인 이미지에 대한 호감과 예찬을 감지하게 된다. 차라리 미디어 형상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던 영국의 팝 아트와 그 정서를 같이하고 있다. 마침 필립 콜버트의 국적도 영국이 아닌가.

 전시회의 홍보 효과를 위해 팝 아트와 앤디 워홀을 언급했겠지만 좀 더 적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필립 콜버트의 예술 경향을 고민 없이 팝 아트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팝 아트는  미국과 영국에서 1960년대에 등장한 미술 경향으로 팝 아트라는 용어에는 시대 양식으로서 정리되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미술에 같은 용어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이다.

 마침 전시회장에서는 이 전시를 유치한 기획사 대표가 필립 콜버트의 예술을 설명하는 적절한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필립 콜버트는 일반적인 소재들이 예술로 사용되는 팝 아트를 뛰어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 정신과 그 가치를 구체화시키는 메가 팝 아트라는 장르를 개척한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이다."라고.

 보다 필립 콜버트의 미술을 이해하게 하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모호한 구석이 남는다. 그리고 이 전시의 부제로 제시한 "넥스트 아트: 팝 아트와 미디어 아트로의 예술여행" 또한 적절하지 못하고 개념의 혼동을 가져오는 표현이라 생각된다. '넥스트 아트'는 또 무엇인가. 그냥 미래의 미술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모호한 표현을 개념처럼 사용했다. 전시의 타이틀이라면 보다 명확한 표현으로 올바른 정보의 전달에 유념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전시된 필립 콜버트의 미술이 주는 밝고 유쾌한 인상은 미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얻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작품 앞의 필립 콜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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