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맑고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일상의 행복감이 충만합니다. 이맘때의 밝은 햇살과 푸른 하늘이 어찌나 좋은지 5월을 일컬어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멀리 바라보는 우리 산의 푸르름이 이토록 상쾌한 느낌으로 와닫는 때가 달리 없지 싶습니다.
차를 타고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도 산을 하얗게 수놓는 아카시아꽃이 푸른 산의 상쾌함과는 또 다른 정취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가까이로는 동네 곳곳의 담벼락에서 하루가 다르게 문득 피어있는 장미꽃의 탐스러운 자태는 익숙해져 밋밋하기만 했던 동네의 분위기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늦은 밤에 베란다 창을 열면 어디선가에서 흘러와 후각을 자극하는 꽃향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입니다.
스코틀랜드의 국민 시인 로버트 번즈(Robert Burns)는 6월에 피는 장미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만, 점점 빨리 피어나는 장미꽃을 볼 때 5월로 바꾸어 노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사랑은 붉고 붉은 장미와 같이
유월에 새롭게 피어나고
내 사랑은 노래와 같이
그치지 않고, 달콤하게 흐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좋은 계절이 우리의 곁을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개나리와 벚꽃처럼 봄이 왔음을 앞서서 알렸던 꽃의 시간이 금세 지나갔듯 찬란한 5월의 밝은 광채도 너무 빨리 우리의 곁을 떠나갈 것입니다.
오늘 낮 기온이 최고 30도에 이를 것이라는 예보가 있으니 벌써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성급한 생각을 앞서 하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봄이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새침한 도시 처녀와 같다는 조금은 뻔한 생각도 해 봅니다.
밝음이 지나쳐 뜨겁고 무더운 여름이 우리를 찾아오기 이전에 5월의 상쾌함에 몸을 던지고 축복받은 이 계절을 마음껏 호흡했으면 합니다.
어렸을 때 흑백 TV에서 김홍철이라는 아저씨가 나와서 요들송을 노래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가성으로 부르는 요들 창법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외국 문물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던 1970년대에 김홍철 아저씨가 입고 나왔던, 달력에서나 보았던 스위스라는 아름다운 나라의 민속 의상이 예뻐 하이디의 나라에 대한 동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에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종로의 YMCA나 명동의 YWCA에서 요들송을 배우는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에는 각 지역의 주민센터에서도 문화 강좌가 개설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이들 몇몇 기관이 아니면 문화 강좌를 접하기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요들 송이 꽤나 인기가 있었던 강좌였나 봅니다.
그 시절에 김홍철 아저씨가 부른 노래 중에 '푸른 창공에 로프를 던져라'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본래 미국의 대중음악으로 슬림 위트먼(Slim Whitman)의 노래로 알려진 'I'm casting my lasso towards the sky'라는 노래가 원곡입니다. lasso가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사용하는 '올가미 밧줄'을 뜻하는 단어로 거의 비슷하게 번안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홍철이 번안해 부르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기 힘들었을 노래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컨트리 음악이 주로 미 8군을 통해서 수입되던 시절에 슬림 위트먼은 미국에서 보다는 유럽에서 더 인기가 있었던 가수였기 때문입니다.
요들 송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스위스의 알프스 지방에서 불리던 요들이 떠오르지만 비슷한 창법이 미국의 카우보이에게서도 있지만 슬림 위트먼보다는 윌프 카터(Wilf Carter)나 엘톤 브리트(Elton Britt)의 요들이 미국에서는 더 유명합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슬림 위트먼의 노래인 인디언 러브 콜(Indian Love Call)이나 몰리 달링(Molly Darling)에 비해 덜 알려진 노래이지만 상쾌한 5월의 계절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