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은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프랑스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을 모은 선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지금은 그 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선집 속의 소설 중에서도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워낙 인상적인 소설이어서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받은 강렬한 인상을 생각했을 때 이런 식의 문장은 지나치게 무덤덤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만큼 마음에 깊게 각인된 소설이었고, 지금까지 읽었던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실 번역상의 한계를 고려할 때, 그리고 단편소설이 가진 묘사의 섬세함과 문학적 감성을 생각할 때 모국어가 아닌 외국의 단편 문학 작품을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소설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이 소설 속 화자인 '그'는 페루의수도인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 떨어진 한적한 해변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망망대해의 태평양을 접한 해변에서 맞이하는 하루의 첫 풍경은 모래 위에 떨어져 죽었거나 죽어가는 새들의 모습이다. 하필이면 새들이 왜 이곳에서 죽어가는지를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도 "새들은 더 남쪽도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지는 것인지를.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 또한 스페인 내전에참전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했으며 쿠바 혁명에 직접 참여한 후에는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안데스 산맥 발치의 페루 해변으로" 인생을 정리하듯 흘러 들어오지 않았던가.
문득 "가마우지들이 흰색과 회색의 연기 기둥처럼 물고기 떼 위를 선회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여자를 발견"한다. 거친 파도를 향하여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에 위험을 직감한 그는 해변을 향하여 달려가 거친 파도로부터 여자를 구한다.
그러나 "날 내버려 뒀어야 했어요."라고 여자는 말한다. 그리고 여자는 "이 새는 모두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하고 그에게 묻고, "그럼 당신은 왜 여기로 왔죠?"라고 묻는다.
새들이 여기에서 죽어가는 이유를 모르듯 그는 자신이 이 섬으로 흘러들어온 이유를 잘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할 뿐 달리 정답을 말할 수가 없다.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있을 거요. 언제나 한 가지 이유는 있는 법이니까."
카페에 머물기를 원하는 여자와 모래사장 위에서 술에 취해 있었던, 축제의 배우임이 분명한 세 명의 사내들, 그리고 여자의 남편 일행이 뒤늦게 등장함으로써 소설은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축제의 밤에 여자는 세 명의 남자에 의해 납치되어 이곳 해변에서 성폭력을 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여자는 이기적인 영국인 남편 일행과 함께 떠나갔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여자는 모래 언덕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는 비어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바닥에 닿는 상실감과 진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의 결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난해한 결말이기도 했다.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카페는 비어 있었다"니. 이와 같은 난해한 결말이 소설이 남기는 여운을 더욱 진하게 만들고 있다.
새들이 죽어가는 그곳은 넓은 태평양을 접한 세상의 끝이면서 상실감과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찾아드는 희망의 끝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들이 이곳에서 죽어가는 이유를 궁금해하듯 이곳을 찾아든 사람들의 상실감 속에서도 각자가 희망을 가질 한 가지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희망의 끝자리는 새로운 출발의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의 화자인 그도 삶의 이유를 찾아 새로운 삶의 자리로 떠나간 것일까. 그러나 이 소설을 거듭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은 그는 세상의 끝에 있었지만 결코 희망의 끝에 서 있지는 않았던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즉 그는 상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 풍경에 속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그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 소설의 화자인 그가 존재할 소설 속 공간은 사라질 밖에는. 그냥 스스로 풍경이 될 공간으로 떠났다고 생각하자.
로맹 가리는 항상 상처 받은 인간의 쓸쓸하고도 슬픈 내용의 짙은 휴머니즘을 지닌 소설을 발표했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을 비롯 두 번의 콩쿠르 상을 수상했던 로맹 가리는 1980년에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희망의 끝자리인 세상을 떠났다.
2001년 문학동네가 출간한 로맹 가리의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는 표제작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외 15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지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이외의 소설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것은 다른 소설들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소설이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사이에 이 소설을 다시 읽곤 한다. 그때마다 이 소설에서 받는 감동은 결코 줄어들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