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1980년대의 대학 생활에 있어 동아리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 대학 생활로 대학생을 분류한다면 학과와 학업에 비중을 두는 학구파와 동아리 생활에 비중을 많이 두는 낭만파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억눌린 시대 상황에 따라 역사와 정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신념에 따르고자 하는 현실참여파도 있었다. 이들을 훗날 운동권이라고 불렀지만 당시에는 이 부류를 지칭하는 마땅한 용어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동아리라는 용어도 아직 사용되고 있지 않았다. 모임을 뜻하는 서클이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동아리라는 순우리말이 이뻐 이 용어로 표기한다.
대학생도 배움의 과정에 있는 만큼 당연히 학업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인으로서의 배움이 반드시 전공 분야의 터득에만 있은 것이 아니기에 동아리 활동의 가치 또한 이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동아리는 농활 등 사회봉사를 위주로 하는 봉사 동아리와 각종 취미 동아리로 나누어지고,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종교 동아리와 학술 동아리도 있어 자신의 취향에 따라 동아리를 선택하면 되었다. 전공보다는 동아리의 경험이 평생의 업으로 되는 경우도 드물게 볼 수 있었다.
아직은 대학 생활이 낯설기만 했던 1981년의 봄, 계열별 입학으로 학과가 정해지지 않아 아무래도 소속감이 덜했던 데다가 어떤 동아리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우리는 공강으로 시간이 빌 때에는 학교 앞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때우며 죽치고 있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학교 앞 음악다방은 늘 만원이었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도 합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학교 앞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어느 날, 선한 얼굴의 동급생이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가 양ㅇ석이라는 친구였는데 자신은 고전음악 감상반에 가입했다면서 그 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이 없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사실 음악 감상이라면 나에게 있어 오래된 취미로 이미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팝 음악을,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클래식 음악을 광적으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 감상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이기에 굳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들어야 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때 나는 연극 동아리 가입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국민학교 5~6학년의 2년간을 동극(아동극을 예전에는 그렇게 불렀다)을 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나름 즐거워했었기에 상급 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연극반이 있었다면 아마 계속 연극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문화 수준과 그 수혜의 가능성에 차이가 너무 커서 연극에 대한 꿈을 키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대학에 와서 연극 동아리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이다. 그렇지만 경상도 억양 때문에 연극 동아리의 가입을 망설이고 있던 중이었다.
양ㅇ석이라는 친구는 이후에 동아리에서 천사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천진난만한 외모와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친구가 두 손까지 모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도저히 그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친구에 이끌려 어영부영 고전음악 감상반에 가입하게 되었다.
동아리라면 술에 떡이 되도록 취했던 신입생 환영회와 대성리나 청평에서 가졌던 엠티(MT)가 먼저 생각난다.
학교 앞 중국집 2층에서 짜장면 한 그릇씩 먹고 짬뽕 국물을 안주 삼아 죽어라 마시는 소주는 대학생이 되어 비로소 경험하는 자유로 느껴졌다. 이런 자유로움은 생각하기에 따라 방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생일 때 줄곧 억눌려 있었던 생활에 이어 갑자기 주어지는 극도의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일 년은 이런 해방감에 취해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와 같은 촌뜨기라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소비적인 매력이 오죽했을까.
경춘선을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의 느긋한 움직임에 몸을 싣고 떠나는 엠티(MT)는 대학 생활의 낭만 자체였다. 대학생 등 단체 손님을 받는 숙박업소에 짐을 풀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막간을 이용, 열을 지어 선 채 선배의 리드로 허슬(당시 유행했던 허슬은 여러 명이 줄을 서서 추는 일종의 단체 춤이었다)을 머쓱해하면서 추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에 가지는 캠프 파이어의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우리 젊은 날의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을 나타내는 듯했다.
그러나 타오르던 모닥불도 식어 싸늘한 재가 되듯 우리의 젊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었지만 젊음의 거친 열정은 쉽게 상처를 입고 제 풀에 지쳐 사그라들기도 했다. 그렇게 젊음이 아픔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돌이켜 볼 때 그 시절은 낭만이 있어 아름다웠다. 그리고 대학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의 중심에는 바로 동아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