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에 진학했던 1981년에는 대입을 위한 학력고사(사실 명칭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의 성적 만으로 입시생의 학력을 평가, 각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입시가 이루어졌다. 지금으로는 낯설게만 느껴질 입시제도이겠지만 당시에도 처음 시행되어 생소한 방식의 입시제도였다. 그전까지는 교육 당국이 인정하는 일종의 자격시험인 예비고사를 거쳐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본고사를 시행하여 신입생을 모집했었다. 그러던 것에서 본고사가 없어졌으니 수험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덜 고생스러운 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당시의 대학 입시제도를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른바 눈치작전에 의해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지금도 사정이 나아진 것이 없겠지만)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입시제도였다.
한 학생이 오직 두 대학에만 지원 원서를 제출해야 했고, 각 대학의 면접 일자와 시간을 통일시켜 수험생들은 지원한 두 대학 중 한 대학을 제비뽑기 하듯 선택, 면접장으로 가야만 했었다. 이렇게 진행되는 면접은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했으며, 어느 정도 운이 작용하는 수험생의 선택에 따라 대학생이 되거나 재수생이 되어야 했던 것이었다.
나는 신촌에 있는 Y대와 회기동에 있는 (결국 내 모교가 되는) K대에 원서를 접수했었다. 그런데 예비 소집일에 확인한 Y대학 지원자의 평균 학력고사 점수가 지나치게 높았다. 그래서 본래 지원하고자 했던 대학을 포기하고 면접 당일에 K대를 선택했다. 그날 저녁 TV 뉴스에는 수많은 대학에서 정원 미달 사태가 속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내가 본래 가고자 했던 신촌의 Y대학의 희망 학과도 정원에 미달되었다.
사실 내 학력고사 점수는 K대학교에 합격하기 위한 점수 커트라인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지만 내 선택에 큰 아쉬움이 없었다. 약간은 어이없는 이유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차선으로 모교에 원서를 쓰게 된 것은 캠퍼스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달력과 같은 인쇄물에서 접하게 되는 그 대학교의 캠퍼스는 나와 같은 촌뜨기에게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보여 주는 확실한 보증이었다.
그러나 면접을 위해 처음 캠퍼스를 찾아왔을 때 캠퍼스의 요모조모를 눈에 담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 그냥 추운 정도가 아니라 추위에 코를 훌쩍이면 콧물이 얼어 콧구멍을 들락날락할 정도의 매서운 것이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매서운 겨울 추위였기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다. 아무리 서울 사람이라도 1980년대 초 서울의 겨울 추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허풍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겨울에 눈 한번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서울의 추위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 온난화로 서울에서 그때와 같은 추위를 더 이상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날의 추위가 얼마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든지 나에게는 대학 입시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지독했던 추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추위가 매서울수록 사람은 더욱 온기를 그리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온기가 가득한 곳으로 찾아들기 마련이다. 1981년 겨울, 서울의 매서운 추위가 그랬듯 1980년대라는 얼어붙었던 시대는 살얼음판과 같았던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를 사람의 온기로 이끌었다. 그리고 당시를 돌이켜볼 때 우리의 시대를 향한 모든 고민은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에 대한 그리움에 다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