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나이에 그녀를 또다시 만났던 적이 있었다. 우리 동기생 친구들과 그녀의 친구가 같이 한 자리에서였다. 우연히 마련된 이 자리에서 이런저런 일상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또 그 이야기다.
"형은 참 철학적이었다. 어려웠다."
"......"
여태 내가 이해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때는 몰랐던 일도 뒤늦게 알게 될 법도 한데...
본인이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지,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말에 "아내에게 잘해 주세요"란다. 그리고 어디서 연락을 받고 먼저 일어나야 되겠단다. 그녀의 친구와 하는 이야기가 시어머니 때문인 모양이다. 며칠 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도 집안 일로 바로 자리를 떠나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녀를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보았을 때, 신혼이라면 행복에 겨워 얼굴도 온몸도 잔뜩 물이 올라야 정상인데 너무 말라 내심 마음이 쓰였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전에 기억하던 겉모습을 되찾아 다행이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조차 쉽지 않은 것 같아 그녀의 일상이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의 흐름은 사람을 퍽이나 무심하게 만든다. 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마당에 20여 년 만에 만난 그녀를 좀 더 살갑게 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날 그러지를 못했다. 그녀가 워낙 빨리 가기도 했었지만 평소에도 살갑지 못한 내 성격 탓도 있었다. 내가 좀 그렇다. 여간해서는 마음에 감정을 담지 않는다. 이런 내 모습에 아내도 "가만 보면 당신은 평소에 정말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도 어떨 때는 같은 사람인가 싶을 만큼 냉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라고 자주 말한다. 그것은 내가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가 아니라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남녀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첫사랑의 열병을 심하게 앓아서인지 이후에 만났던 여자들과는 2~3번의 데이트만으로 내가 관계를 정리했다. 그것은 잊은 줄 알았던 첫사랑의 잔상이 마음속에 남아 이성과의 만남을 방해한 측면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내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사람으로 판단이 안되었기 때문에 서로가 상처가 되기 이전에 서둘러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여자도 있을 터, 당연히 미안한 마음이 있다.
다행히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내가 성격 급한 경상도 남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난한 과정을 싫어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몇 번의 만남만에 흘러가는 말처럼 분위기 없이 프러포즈를 했다. 급작스런 내 행동에 당황한 아내가 한 달만 생각할 여유를 가지자고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 그 한 달이 크게 의미 있는 시간이 못될 것 같았지만 아내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내가 아내에게 전화해서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제 만납시다"라고 말하고 오래지 않아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이것이 원래 내 성격이다.
그날 내가 그녀를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오래 전의 시간에서 멈추었고, 그 기억들이 내 마음속 깊숙이에 묻혀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추억할 만큼 내 마음이 여유롭지도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를 만날 일도 없었고, 앞으로도 만날 일은 쉽게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의 친구와 내 친구가 결혼, 부부의 연을 맺고 있으니 그 집안의 경조사에서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녀를 좀 더 살갑게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만날 기회가 없더라도 최소한 먼저 죽는 사람의 부음을 전해 들을 수는 있겠다. 나이는 내가 한 살 위이지만 저승길 가는 것은 나이순이 아니니 반드시 내가 먼저 죽으란 법은 없지만... 실없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온 시간에 비해 살아갈 시간이 많이 부족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이에 자주 지난 삶을 돌이켜보듯 내 젊은 날의 첫사랑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 볼 필요를 느낀다. 이렇게 생각하니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떠나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깨달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는, 그것이 어쩌면 내 젊은 날의 의미가 될 수도 있어 글로 정리해 보는 것이다.
먼저 그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있다. 암울했던 1980년대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기쁨과 기대, 그리고 번민과 좌절을 통해 그 시절을 아프지만 아름다운 것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마땅히 고마워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그녀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있다. 서로를 가까이할 수 없도록 한 내 완악함과, 이로 인해 힘들었을 그녀의 시간에 대한 미안함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 늦었기에 이런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더불어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모자라, 아픔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밝혀 둔다. 나에게 사랑은 아픔이었다. 그리고 그 아픈 사랑과 상실감을 이별이라는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곧 아내와 딸의 곁을 떠나는 순간에 나는 앞으로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에 아파할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더 오래 그들의 곁에 머물지 못함을, 그 모자라는 사랑을 아파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녀를 한때 사랑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내 마음이 그녀에게 미치지 못한 아픔이 있다. 나로 인해 힘들었을 그녀를 헤아리지 못한 나의 부족했던 마음, 어쩌면 한 번쯤은 그녀를 잡아주지 못하고 그녀를 외면해야만 했던 나의 어쩔 수 없었던 마음......
비록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은 오래전에 멈추었지만, 모자랐던 내 마음만큼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 그녀에게 완악할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그녀에게 내 방식을 강요한 꼴이 되어버렸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내가 일방적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쉽게 잊지도 못할 거면서 내가 먼저 사랑을 놓아 버렸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사랑을 앞에 두고 비겁했다.
변명 같지만 이점에 대해서는 내 입장을 밝힐 필요를 느낀다. 우선 나는 그녀가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두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느끼는 차이는 그녀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단점이나 결점이 되는 것이었다. 만일 그녀가 나를 이해하고자 했다면 그 차이는 나의 약점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그 차이를 감추지 않음으로 해서 그녀가 나를 이해하고 내 약점을 감싸주기를 바랐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나도 그녀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불완전함으로 인한 차이를 나는 처음부터 인정하기로 했었다. 두 사람의 차이, 그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리가 이해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도 나는 그녀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서 어릴 때부터 축적된 것에 더하는 외로움이기에 마음이 슬펐다. 이 심정은 그대로 사랑의 상실감으로 연결되었다. 그때는 내가 사랑을 놓아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비겁했던 자신의 결정이 기억에 남아 이후의 시간을 죄책감으로 힘들어했었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을 빨리 인정하지 못할 만큼 내가 이기적이었다. 늦었지만 내 잘못을 이렇게 글로서나마 고백할 수 있어 다행이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