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 그리고 역사에 대한 짧지만 거대한 이야기

- 윌리엄 포크너의 '곰(The Bear)'을 읽고

by 밤과 꿈

미국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쓴 일련의 소설은 윌리엄 포크너를 어려운 작가로 기억케 할 만큼 충분히 난해하다. 오래전이지만 처음 접한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은 소설 '곰'의 3장 발췌본이었다. 그때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 매력을 느끼고 택해 읽었던 소설이 대표적인 장편소설의 하나인 '음향과 분노'였다. 이 소설은 소설 속 인물에 따른 시점의 변화가 심하고,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적용, 시간과 공간이 섞이는 등 읽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소설이었다. 게다가 번역이 주는 한계가 있으니 그 난해함에 흥미를 잃어 읽기를 중단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태생으로 1929년에 발표한 '음향과 분노'를 비롯해 이듬해에 발표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그리고 '성역', '8월의 빛' 등의 소설을 1년 단위로 발표했다. 1936년에는 1949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작가 스스로가 "미국인이 쓴 최고의 소설"이라고 자평한 대표작 '압살롬, 압살롬'을 발표하여 남북전쟁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남부 사회의 변천과 인간의 욕망을 작가 특유의 강렬한 언어로 묘사했다.

1942년 '모세여 내려가라와 다른 이야기들'에 수록되어 발표된 '곰'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의 시대상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 5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3장과 마지막 5장은 백인 소년 아이작 매캐슬린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고, 4장은 아이작의 할아버지인 캐로더스 매캐슬린으로부터 시작된 가문의 어두운 과거를 물려받은 후손들의 이야기를 남북전쟁을 전후한 미국의 사회상과 함께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기, 미국 남부 백인 가문의 일대기, 그리고 남북전쟁을 전후한 미국 사회의 변화상이라는 3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년 아이작의 성장기는 전설적인 곰 올드벤을 쫓는 샘 파더스와 분 호갠벡에게 올드벤의 죽음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이작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소년의 성장기라고는 하지만 이 소설은 곰 올드벤이 대변하는 대자연과 이를 쫓아 기어이 죽이고야 마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거대 담론을 담고 있는, 장엄한 구성으로 독자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하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로서는 비교적 읽기 쉬운 문체로 쓰였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읽기 수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복문과 중문을 많이 구사하는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이 가지는 정치한 묘사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숲을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기술의 매력적인 문장을 들 수 있다.

시간이 생겨나 시간이 되는 곳,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망각의 그늘 아래 죽음을 면제받은 늙은 곰과 죽음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된 자신이 서있는 모습을.
만물이 잿빛으로 사그라지던 11월보다 어쩌면 더 어둑어둑한 이 여름 숲에서는, 정오가 되어도, 햇빛이라고는 바람 한 점 없는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땅에 내리 꽂힌 얼룩덜룩한 무늬가 전부였고, 완전히 마르는 법이 없는 땅바닥에는 늪 살모사, 물뱀, 방울뱀 등이 기어 다녔다. 몸통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컴컴한 숲에 드리운 햇빛 조각들처럼 보여서 움직이기 전까지는 뱀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한편, 윌리엄 포크너는 남북전쟁을 전후한 매캐슬린 가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4장에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스물한 살의, 매캐슬린 가문의 상속자 아이작과 친척인 또 다른 매캐슬린과의 상속과 관련한 대화로 이루어진 4장은 대화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의 마침표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긴 호흡과 난해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윌리엄 포크너의 독창적인 문장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원문을 최대한 살려 번역하기에도 곤란이 있어 번역자도 이 문제를 가장 고심, 원문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리면서 우리말에 적합한 방향으로 수정, 번역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엄밀하게 말할 때, 어쩔 수 없는 번역의 한계이지만, 번역의 고유 영역을 인정하더라도 원작의 훼손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소설 구성상의 완결성에 부합하지 않는 4장은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왔지만, 4장이 있기에 남부의 역사와 사회상 등 다양한 주제로 이 소설의 의미가 확장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왔고, 현재도 이 소설에 대한 다양한 비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알베르 카뮈가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평한, 그리고 마르케스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한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 세계에 접근하기에 가장 용이한 소설로서 '곰'이 가지고 있는 흡인성을 외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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