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와 밀크셰이크

by 밤과 꿈

1980년대 초, 종로는 젊음의 거리였다. 물론 종로의 전부가 아니라 1980년에 부도로 문을 닫았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화신백화점 건물과, 그 건너편에 위치한 종각에서부터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이 위치한 종로 3가까지가 우리가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딱히 젊음의 거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든 연령층이 애호하던 곳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종로를 제외하고선 젊은이들이 모여 즐길 장소가 별로 없었다. 대학이 모여 있는 신촌 정도가 생각나고, 대학로도 이후에 활성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종로에는 국내 최대의 서점인 종로서적이 있어 서점으로서의 본 기능 이외에 휴대폰은커녕 삐삐조차 상상도 못 하던 시절에 약속 장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고, 대형 생맥주집인 그랜드 비어와 자이언트 비어가 우리의 발길을 이끌었다. 그리고 도로 건너 YMCA 빌딩을 약속 장소로 정한 사람들은 주로 피맛골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강남의 개발이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기에는 여건이 불비(不備)한 면이 많았다.


대학가에도 어지간한 주점이나 레스토랑은 있어 춤을 추기 위해 디스코텍을 찾을 경우가 아니면 학교 앞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자주 찾았던 디스코텍은 동대문에 있었던 이스턴 호텔 디스코텍(신중현과 뮤직 파워의 노래와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과 이태원에 있는 호텔 나이트(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있었고, 저렴하게 즐기기에는 종로 2가에 마부라는 디스코텍이 있었다. 이곳은 플로어가 비좁아 디스코텍의 속칭인 닭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남의 발을 밟기 일쑤였지만 오히려 젊음의 열기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의 제안으로 네 명이 번거롭게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 점심 한 끼를 먹고 온 일이 있어 기억에 남아 있다.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이라 기억에 남았으리라. 종로 2가에 숲 속의 빈터라는 경양식집이 있었다. 친구가 그 집의 무엇에 꽂혀 우리 모두를 부추겨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시꺼먼 남자 넷이서 점심으로 칼질(?)을 하기 위해 시내 경양식집을 대낮에 찾다니,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어디서 그 집의 돈가스가 특별히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맛을 내는 돈가스도 아니었고, 현재 성북동에 있는 왕돈가스처럼 양이 푸짐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여학생과 데이트할 때나 먹어볼, 비싼 돈가스를 보람 없이 먹어치웠으니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까웠던 것이었다.

한 번은 선배 한 사람이 밀크셰이크라는 신기하고도 맛있는 음료를 사주겠다고 해서 종로를 지나 시청 쪽에 있었던 덕수제과라는 유명한 제과점으로 같던 적이 있었다. 지금에야 집에서도 만들어먹는 음료이지만 당시에 처음 먹어보는 밀크셰이크의 맛은 속된 말로 끝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맛이 있으면 시내로 나간 시간이 아깝지 않다. 게다가 선배가 계산, 공으로 먹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박하고 약간은 촌스러운 기억이지만, 지금도 블루보틀이나 셰이크 쉑(쉑쉑) 버거가 국내에 처음 영업점을 열었을 때 그 맛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장사진을 이루는 것을 보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속에 그런 천진함이 있으니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각박하다고 해도 그나마 살만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