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음악이 있어서 따뜻했던 공간

by 밤과 꿈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페는 1980년대 초반, 지친 내 마음에 평안을 주는 유일한 장소였다. 편안한 마음의 상태, 그것은 내 경우에 무념의 상태를 뜻한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우고 공간을 타고 흐르는 음의 떨림에 무심하게 귀를 열어 놓는 것. 밀도 높은 감동의 시간이다. 첼로가 노래하는 짙은 현의 떨림, 영롱한 피아노의 타건 등 음악의 세포들이 가감 없이 느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며 살고 싶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다 보니 1980년대에 서울에 있었던 어지간한 클래식 카페는 거의 섭렵했었다. 신입생 시절부터 드나들었던 학교 앞의 밤과 꿈, 그리고 경희 다방. 밤과 꿈에서는 마란츠 앰프와 AR 스피커가, 경희 다방에서는 매킨토시 시스템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슈베르트의 리트(독일 가곡) 제목을 상호로 사용한 밤과 꿈에서는 카페의 시그널로 기타 독주곡으로 편곡된 슈베르트의 밤과 꿈을 자주 틀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종로 2가 YMCA 빌딩 옆에 있었던 글로리아(이곳에는 탄노이 G.R.F. 메모리 스피커가 우아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 뒤편으로는 알텍 A5 스피커가 위용을 자랑하던 아그레망과 소노라마(이곳에는 탄노이 에딘버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가 자주 가던 카페였다.


오래지 않아 학교 앞의 밤과 꿈과 경희 다방이 사라지고 새로 심포니라는 카페가 들어섰다. 그리고 건너편으로는 비탈리라는 이름의 카페가 새로 생겨, 이 두 곳의 매출 상당 부분이 고전음악 감상반 회원들에 의한 것이었다.

아 참, 이문동에 있었던 작품 80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카페도 빼놓을 수 없다. 미술을 전공하는 커플이 운영하던 곳으로 일요일은 무인 판매로 각자 커피를 타서 마시고 설거지까지 해놓아야 했다. 커피값은 바구니에...... 눈이 많이 내린 1학년의 겨울에 독서 모임(사실은 운동권 학습, 이념 서클이라고 불렀다)을 마친 나와 친구들은 중앙도서관 앞에서 눈싸움을 하다가 목이 말랐다. 이에 내가 가진 슈베르트의 3대 연가곡집 음반을 담보로 맡기고 맥주를 마셨던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대 입구의 아울로스, 신촌역의 콜롬비아, 명륜동의 사라방드와 경복궁 건너편의 예방, 안국동의 브람스(이곳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도 추억이 어린 공간이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페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음악감상실의 형태로 운영되는 곳은 몇 군데 있지만. 그때에도 명동의 필하모니와 종로의 르네상스라는 유명한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그러나 입장할 때 주는 음료권으로 차를 마시는 장소와 극장식으로 좌석을 배치한 감상실이 따로 있어 왠지 편안한 느낌이 적다. 음악 감상이 강요되는 것 같은 분위기의 감상실과 휴게실 수준의 다실이 조화롭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격식 없이 어두운 구석자리에 앉아 한자리에서 책도 보다가 음악도 듣는, 그러다 대화도 나누는 작은 카페의 편안함이 너무 좋았다. 방학이 되어 음악 감상 모임 장소로 음악대학의 감상실을 사용하지 못할 때 명동의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을 이용했었지만, 평소에는 굳이 음악감상실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음악감상실이나 클래식 카페가 사라진 것에는 대체로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오디오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굳이 전문적인 음악감상실이나 음악 카페를 찾아가서 음악을 들을 일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카페 스타일의 변화로 내부가 밝아지고 개방적이 되어 클래식 음악의 내성적인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이다.

오히려 어두워 자신이 드러나지 않음에 안도하고, 어지러운 세상과는 분리된 듯 비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옛 카페가 이젠 그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삐그덕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나를 반기는 음악과 편안함이 드없이 따뜻하기만 했던 공간을 이제는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지금처럼 포장 주문이 일반화되고 밝아진 카페 분위기에서는 무언가에 쫓기듯 빨리 자리를 떠나야 할 것만 같다.

이처럼 나를 어지러운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줄, 나만의 공간이 보이지 않아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