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음대 작곡과 복학생 장ㅇ식 선배의 주도로 36명의 동아리 회원들이 지리산 종주 등반에 나섰던 것이.
1, 2학년이 대부분으로 지리산이 초행이었던 우리 모두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저녁 10시 용산역에 집결, 남원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지리산 정복의 장도(?)에 올랐던 것이다.
아침에 남원에 도착, 아침을 먹고 뱀사골 계곡에서 등반을 시작, 하동 쌍계사로 하산하는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원래 2박 3일의 일정이 적합한 것이었지만 여학생의 체력을 감안해 느슨하게 일정을 짜게 된 것이었다.
뱀사골 계곡에서는 쨍하게 맑았던 일기가 산을 오를수록 험악해지는 것이 급기야 앞서 가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졌었다. 지리산에 있는 시간 내내 이처럼 오락가락한 날씨를 경험했고, 기를 쓰고 올랐던 천왕봉에서는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때문에 천왕봉임을 표시하는 비석만 보고 내려왔던 것이다.
열 명이 넘는 여학생과 함께 종주를 계속하기는 무리라고 생각, 장터목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남게 된 쌀을 민박집에 그냥 넘겼더니 민박집에서 고맙다고 막걸리 한 양동이를 주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 어둠이 깔린 중산리 계곡으로 앞사람을 의지하여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갔다. 우리 인원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너럭바위가 있어 플래시의 불빛만 밝힌 채 오락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별다른 오락이 필요 없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저 멀리 산의 능선과 자신의 빛남을 드러내는 밤하늘의 별들, 그리고 오락을 불가능케 하는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압도했다. 반드시 눈에 보여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악천후와 등반에 대한 부담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지리산의 위용을 오히려 어둠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등산을 할 기회가 많았지만 산 정상 자체가 목적이 되어 산에서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큰 경치는 볼 줄 알지만 소중한 작은 것들, 이름 없는 야생화와 개울의 송사리, 계곡 바위에 기생하는 이끼 등에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 작은 자연에 대한 관심 때문에 시간에 늦어 정상에 못 오른 들 무슨 문제일까. 오르다 못 오르면 그만 내려오면 될 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와 갖가지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주는 자연의 감동은 또 어떤가.
짧은 시간 동안 진한 감동을 맛보고 민박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광란(?)의 막걸리 파티로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그날의 막걸리는 지금까지도 먹어본 막걸리 중에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로 기억하고 있다. 동기생 신ㅇ수는 수없이 오바이트를 하면서도 죽어라고 막걸리를 마셔대고 있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제정신이 아니기는 마찬가지.
산에 취해서 좋았고, 술에 취해서 좋았던 밤이었지만 먼저 (어두웠기에 상상이 가능했던) 지리산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었기에 그 감동을 이어갈 수 있었으리라.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지리산은 환영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엄격했던 장터목 산장의 털보 아저씨와 비에 침수되어 버린 텐트 등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들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준 장ㅇ식 선배가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뉴욕대에서 현대음악 작곡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날 목회자로 변신했다. 술을 좋아하고 입이 걸기로는 따를 사람이 없었는데 목회자라니. 접목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멀리 타국에서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 있을 보고 싶은 선배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