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by 밤과 꿈

한 시대를 산다는 것은 혼자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와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그 모든 사람들 속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되는 개인들이 있다.

내 경우는 같은 물리학과의 동급생 친구 두 명이 그런 경우다. 사실 친구라고 하면 학과보다는 동아리와 학생운동권에 더 많았지만, 특히 이 친구들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살아왔던 어려운 환경과 극복해야 할 현실에 대한 시선이 확연히 달라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익명성을 따른다고 해도 이 친구들의 삶을 언급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두 사람 모두 특별한 인생 스토리가 있지만 대학에 머물 때의 이야기로만 한정하는 것은 두 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ㅇ선이라는 친구는 일본 문부성에서 선발하는 장학생의 자격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었다. 남의 나라에서 교육비와 생활비를 전액 부담하는 무상교육이니만큼 선발 시험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님은 뻔한 일이었다.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본어 공부에 기울인 그의 노력은 눈물이 겨운 것이었다. 가난했던 그 친구는 선배와 친구로부터 일본어 교재와 테이프, 워크맨을 빌려 속성 학습에 몰입했다고. 그의 말에 의하면 잠 잘 때도 일본어 학습 테이프를 틀어놓고 자다 보니 일본어로 꿈을 꾸게 되더란다.

그렇게 해서 1차 시험을 합격했지만 면접을 앞두고 짧은 기간에 일본어 회화가 능통하게 될 리가 만무한 일. 그 친구는 예상 질문에 대한 답을 외워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친구의 부탁으로 내가 우리말로 예상 답변을 작성하고, 그 친구는 이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외워서 면접을 본 결과 유학 시험에 최종 합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과생 가운데에는 신기하게도 국어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친구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그 친구가 칭찬과 격려를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친구의 가정 형편과 처한 상황이 학업을 지속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었다. 가난했고, 형이 있었지만 중증 장애인으로 학교를 졸업한 뒤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야 할 입장이었다. 동생들이 한결같이 공부를 잘해 대학을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 그 친구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자신의 여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꿈을 좇는 길을 택했다. 참 독한 친구였다.

또 한 명의 친구 이ㅇ녕, 조금은 거칠고 그침 없는 행동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친구였다. 2학년 겨울방학이었을 것이다. 함께 도서관에 있다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다. 갑자기 여자 친구가 보고 싶다면서 청주에 다녀오겠단다. 친구의 즉흥적인 행동이 황당했지만 워낙 성정이 그런 친구였다. 다음에 들으니 여자 친구의 집으로 가서 여자 친구의 아버지에게 인사까지 드리고 왔단다.

그 친구는 수학과 여학생 심ㅇ네스와 사귀고 있었다. 교육자인 여자의 아버지도 친구를 마음에 들어 했던 모양이었지만 친구에 대한 뒷조사를 한 것이 친구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

부산에서 울산행 시외버스를 타면 버스는 동래를 한 번 들렀다 가게 된다. 언젠가 친구의 소개로 그곳에서 노점을 펼치고 있었던 친구의 형에게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홀어머니를 비롯한 친구의 가족 모두가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와 같은 자신의 배경을 부끄러워할 친구는 아니었지만 여자 친구 아버지의 처사를 용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여자 친구와 결별하게 되었지만 계속 학교에 머무는 한 여자 친구를 잊기도 힘든 일인지라 휴학을 했다. 친구의 마음으로는 자퇴를 할 생각이었지만 지도 교수의 만류가 있었다. 그러나 군 복무 중 복무 증명원을 제출하지 않아 자동 제적 처리되었으니 결국 본인의 뜻대로 된 셈이지만. 안ㅇ선이라는 친구가 독했다면 이ㅇ녕이라는 친구는 보다 감성적이었다.

친구 이ㅇ녕은 군 복무를 마친 후 다른 대학을 가기 위한 등록금 마련을 위해 산판 일을 하다가 크게 다치기도 하고, 자책하듯 시내버스에서 물건을 팔며 대충 살아가기도 했었다. 결국 다시 대학 진학을 못하고 홀어머니의 간청을 못 이겨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 공무원 생활을 하다 공기업에 들어갔다.

언젠가 이들 두 친구와 또 다른 친구 김ㅇ수,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학교 앞에서 진탕 술에 취한 날이 기억난다. 아마도 여자 때문에 학교를 떠나 군 입대를 앞둔 이ㅇ녕을 환송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모두 많이 취해 어떻게 시작된 싸움인지 모르지만 이ㅇ녕과 안ㅇ선이 동네가 시끄럽게 싸우고 있었다.

말이 싸움이지 안이 이를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 ××야"와 같이 욕설까지 섞어가면서. 신기하게도 이ㅇ녕은 그 답지 않게 아무 대거리도 없이 맞고만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이 뜯어말려 싸움은 끝났고, 우리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또다시 술을 마셨다.

친구 안ㅇ선은 그렇게 학교를 떠나는 이ㅇ녕의 무책임한 처사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 친구의 선택을 두고 옳고 그름을 헤아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안ㅇ선이 가족 대신 자신의 꿈을 선택했을 때 왜 고민이 없었을까. 깊은 고민 끝에 올바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의과대학에 합격한 동생의 등록금을 부유했던 친구(함께 술을 마셨던 김ㅇ수)의 도움으로 해결했으니 가족의 사정을 완전히 외면했던 것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이ㅇ녕의 선택을 젊음의 치기로 보거나 섣부른 판단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사람마다 외부의 반응에 대한 감응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순간 친구로서는 올바르다는 판단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사람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시절 두 사람 모두가 무척 아팠고, 아팠던 젊음이 짐작하기에는 각자의 미래가 밤하늘의 별처럼 아득하기만 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