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에 관련한 것이다. 술이라는 것이 방종한 생활 태도를 바로 연상케 하는 것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업 이외에는 모든 본능을 억눌러야 했던 우리의 교육 현실로서는 대학에 가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술로 점철된 신입생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과와 동아리의 신입생 환영회와 엠티(MT)라는 공식적인 자리는 물론, 평소에도 선배를 따라다니며 술을 마시는 것 또한 대학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아리에서 자주 갔던 학사주점으로 농촌과 아방레물이라는 곳이 있었다. 물론 신입생 환영회는 2층에 넓은 단체석이 있었던 중국집(상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에서 주로 가졌지만 몇몇 선배들과의 사적인 술자리는 이 두 곳의 학사주점을 단골로 이용했다. 지금 대학생들의 기준으로 볼 때 당시의 술안주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것이 공식적인 1부 순서를 마친 후에 자장면이나 짬뽕으로 저녁을 먹고, 짬뽕 국물로 만든 술국과 만두를 안주로 해서 강소주를 마셨으니 취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학사주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라면으로 요기를 한 후에 어묵탕 같은 빈약한 안주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돌이켜보면 지극히 조촐한 술자리였지만 그 자리가 풍성할 수 있었던 것은 선후배 간의 정담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자주 드나들던 곳으로는 대학촌이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노포가 있었다. 이곳은 주로 운동권 학생들이 애용하던 곳으로 안주 없이 깍두기에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그곳에서 점심이나 저녁으로 라면을 먹고, 이어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물리학과 학생이었던 나를 대학촌의 주인아주머니는 사학과 학생으로 기억했고, 간혹은 탈춤 동아리 회원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굳이 아주머니의 착각을 수정할 필요를 못 느껴 그냥 그렇게 지냈다. 이 술집은 몇 년 후에 장사를 접었는데 마지막까지 그 아주머니는 나를 사학과 학생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아리에서의 술자리는 신입생 시절이 지나면 조금은 차분해지기 마련이다. 대학 생활의 신세계를 미친 듯이 즐기다 비로소 현실을 인식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 생활을 하다 보면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은 기본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어 있다. 먼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동기생과의 독서 모임 후 술을 마시게 되고, 또 한 번은 후배들의 독서 모임을 지도하면서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된다. 이를 포함,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을 마실 일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몇 년 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문상 온 후배 송ㅇ하가 또 그날의 술자리 사연을 들먹인다.
그 후배로부터 이미 수차례에 걸쳐 질리도록 들었던 내용이지만, 그 녀석은 나만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나 보다.
"행님은 참 나쁜 사람 인기라"라고 삼천포 촌놈인 후배는 징그럽게 들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낮부터 나와 후배 둘이서 마신 소주가 16병이라고. 그중에서 자신이 1병 정도, 내가 15병을 마셨단다.
글쎄, 그 많은 술을 내가 다 마셨다니 믿기지 않지만 후배가 그렇다면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량을 헤아리면서 술을 마셔보지 않아서...
결국 주인아주머니가 내 손을 붙잡고서는 더 이상 팔 술도 없으니 제발 그만 마시라고 통사정을 하는 통에 그 집에서의 술자리는 끝났지만, 다른 친구와 후배들이 모여 생맥주를 마시는 자리에 내가 합세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슬그머니 도망을 쳤단다.
이렇게 말하면 그날 내가 기억을 못 할 정도로 많이 취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정신을 잃을 만큼 취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내가 타고난 술고래도 아니다. 술이란 한 잔에 취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밑 빠진 술독처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날도 있다. 술이 받지 않으면 그만 마시면 될 일이고, 술이 목구멍을 타고 술술 들어가면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마시면 될 일이었다.
내 음주 스타일이 천천히, 술을 깨 가면서 오래 마시는 것인지라 비슷한 경험이 많아 기억에 남겨 두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가장 오래 마신 술자리로는 오후 6시에 시작하여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와 술을 마셨던 후배 중에는 내 음주 스타일에 질린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사실과는 다르게 술로서 나를 기억하는 억울한(?) 일도 생겨난 것이다.
술 때문에 진짜 전설이 된 사람이라면 두 명의 동아리 선배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앞서 '산에 취하고, 술에 취하다' 편에 언급한,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장ㅇ식 선배이다. 술을 잘 마시고 남다르게 걸쭉한 입담을 지녔던 선배가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파격이었다. 하긴 내가 결혼 후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배가 있다.
또 한 사람의 술로서 전설이 된 선배가 있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무공해차 사업을 하고 있는 김ㅇ호 선배로 여학생의 입장에서는 공포라고 할 수도 있는 선배였다. 처음 선배를 보았을 때 선배는 군 복무 중이었지만 항상 사복 차림으로 전혀 군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대북 첩보부대 소속으로 주량도 주량이지만 거친 언행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주눅이 들게 했다. 술을 마시면 자신의 머리로 소주병을 깨곤 했는데(그 짓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선배의 별스런 행동들이 우리 남학생들은 싫지는 않았지만 여학생에게는 곤혹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선배가 대만 유학 중 병으로 귀국, 큰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었다. 술에 있어서만큼은 대만인들에게 지기 싫었던 선배는 받은 술잔을 한 번에 비우는 중국식 습관을 이용, 대만인들을 술로 제압하느라 거푸 술잔을 비우는 통에 그만 술병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 선배는 젊어서 많이 마신 술 때문에 속을 버려 이제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도 지금은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 속을 버려서가 아니라 술의 힘을 빌려야 할 만큼 힘든 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술 자랑처럼 미련한 일이 없다지만 이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