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도 4학년, 아니 3학년 2학기쯤 되면 동아리에서 멀어진다.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생각으로 활동이 뜸해지기도 하고, 특히 여학생들은 동아리 내 남학생과의 이성 문제가 발생하면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가 신입생으로 처음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에 네 명의 4학년 여자 선배들이 있었다. 김ㅇ남, 노ㅇ애, 양ㅇ인, 이ㅇ진 등 네 명의 여자 선배들은 졸업할 때까지 끈질기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우리와 놀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 네 명 모두 사귀던 남학생이 없어 청춘사업으로 바쁘지 않았기에 동아리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한 명, 같은 학번의 허ㅇ애 선배는 동아리 선배 남학생과 캠퍼스 커플이 되어서인지 드문드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반드시 짝이 없어 네 명의 여자 선배들이 4학년이 되어서도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워낙 결속력이 강했던 데다가 모두가 동아리에 대한 애착이 컸다. 고전음악 감상반이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동아리로 그 학번 위로 선배라고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았고, 동아리방도 배정받지 못했을 때인데도 그 학번의 결속력이 남달랐던 것은 같은 학번의 남, 여학생들의 관계가 유난하게 돈독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같은 78학번의 남자 선배로는 먼저 김ㅇ안 선배가 생각난다. 어느 시간이고 동아리방을 지키고 있었던, 심지어는 휴일에도 동아리방에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선배. 전공이 생물학이면서도 동아리방에서 논어 같은 동양 고전을 원서로 읽었던, 조금은 독특한 선배였다. 그렇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느긋한 모습을 보여주던 선배가 있었는가 하면, 그 선배와는 결이 조금 다른 세 명의 선배들이 있었다. 산업대학 3인방이라고 불러도 좋을 세 명의 선배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했던 선배는 앞서 '어쩌다 보니 술로서 전설이 되었다' 편에서 언급했던 김ㅇ호 선배였다. 그리고 우리가 2학년일 때 복학, 대학 생활을 함께 했던 조ㅇ현 선배와 엄ㅇ호 선배가 있었다. 이들 선배들은 다소 거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교내 체육대회에서 체육대학 학생들과 시비가 발생, 싸워 제압했다는 일화를 듣곤 했다. 또한 김ㅇ호 선배가 DJ를 보고 있던 다방에서 시비가 발생하면 먼저 김ㅇ호 선배가 DJ박스를 박차고 나와 거친 입담으로 상대하고, 뒤이어 조용히 앉아있던 조ㅇ현 선배가 혼자서 상대방을 상대하여 제압한 다음에는 엄ㅇ호 선배가 뒤처리를 담당했다고 한다.
엄ㅇ호 선배는 강원도 출신답게 토속적인 외모에 수더분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조ㅇ현 선배는 거친 듯하면서도 감정의 변화를 예측하기 힘든,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선배와 함께 북한산 산행을 갔을 때 선배의 성격을 알만한 사건이 있었다. 하산을 하고 뒤풀이로 생맥주를 마시던 중이었다. 후배 하나가 "조용히 해라"라는 조ㅇ현 선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눈치 없이 나서서 나대다가 선배가 던진 생맥주 잔을 얼굴에 받아야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안 했지만 괴뢰군이라는 별명처럼 표정 하나 변함이 없이 "이 xx야, 내가 조용히 하랬지"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선배의 성격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거친 선배들이 어떤 마음으로 고전음악 감상반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아리에 들어왔는지가 궁금했었다.
다른 선배들은 동급생 여자 선배들이 졸업한 후에 복학, 같이 어울리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었지만 김ㅇ호 선배는 군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뻔질나게 사복 차림으로 학교를 찾아왔었기에 여자 선배들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워낙 입담이 걸쭉한 선배인지라 동기 여학생에 대해서는 이성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듯, 하는 말이나 행동에 그칠 것이 없었다. 여학생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야 김ㅇ남. 인마야 일루 와봐"라고 거칠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착한 김ㅇ남 선배는 "또 왜 그래"라면서 별로 싫은 기색 없이 상대를 해주었다. 반면에 강단이 있었고 말발로는 절대 지지 않을 노ㅇ애 선배는 "형수 뻘 되는 사람에게 어디서 까불어!"라고 대거리를 했다. 78학번 선배들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사이였던 것 같았다.
어떤 친구는 여자 선배에게 연애와 같은 인생 문제를 털어놓고 상담을 구하기도 했지만, 그런 이유가 없더라도 1학년이었던 우리에게 4학년 여자 선배는 그 이름만으로도 따뜻하고 넉넉한 존재였다. 4학년이 되어서도 후배들을 챙기던 그 선배들이 있었기에 대학 생활의 한 페이지를 추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지금도 유대를 가지고 있는 김ㅇ남 선배는 졸업 후에 국내 유수의 패션회사의 디자인실 실장을 거쳐 자신의 브랜드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노ㅇ애 선배는 졸업하기 전에 피앙세를 만나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 졸업하기 전에 약혼자를 불러 우리에게 술을 사주곤 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이ㅇ진 선배는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특수 분장을 공부하고 돌아와 영화 방면에서 일했었다.
오랫동안 그리운 이름들이었는데 수년 전에 김ㅇ안 선배의 가정에 혼사가 있어 30여 년만에 양ㅇ인 선배와 이ㅇ진 선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가웠다.
60대인 선배들에게 바랄 것이 건강밖에 무엇이 있을까. 모두들 건강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