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새와 프락치

by 밤과 꿈

1980년대 초에 각 대학교에는 단과대학별로 한 명씩 관할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짭새라고 부르는 그들의 주된 임무라는 것이 요주의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 본서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한다는 학생들이 주변에 소문을 내면서 활동을 할 리도 만무해서 그들의 임무에 별다르게 성과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고작 단과대학 게시판에 기재되는 약속이나 파악하는 정도였고, 어쩌다 발생하는 시위를 제압하거나 유인물을 회수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거의 하는 일이 없는 것이어서 보직치고는 그야말로 꿀 보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 사복형사들의 평소 행동에도 긴장감이라고는 별로 없어 치직 소리 나는 워키토키를 들고 스스럼없이 학생 휴게실을 드나들고는 했었다. 나름 신문지로 워키토키를 가린다고 가렸지만 영락없이 "나는 짭새요"라고 광고하는 형색이었다.

그들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떠맡은 사람들이고, 직장에서 부여받은 일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개인적으로 그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합리적인 가치와 긍지는 스스로의 내면에 물어봐야 할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학생 중에서도 학생운동을 하는 같은 과 동급생의 동향을 파악하고 다니는 프락치가 있었다. 우리 물리학과 동급생 중에서도 프락치가 한 명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는 우리가 그 존재를 파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전공 강의가 끝나고 우리 과의 주ㅇ곤과 이ㅇ봉, 그리고 나, 그렇게 3명이 빈 강의실에 남게 되었다.(우리 학번 중 문리대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학생운동을 하는 인원은 극히 소수여서 물리학과에 3명, 수학과에 2명, 화학과에 1명 등 6명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도 강의실을 나가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하면서 우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실소를 머금고 녀석을 놀리듯 쓸모없는 대화만 나누다 강의실을 나왔다.

사복형사들이야 그 일이 직업이라 한편으로는 이해해준다고 하더라도 동료 학생의 뒤를 캐고 다니는 프락치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는 일로 봐서 장학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활비 정도를 지원받는지는 모르지만, 프락치로 활동하는 그 친구의 행색이 그다지 궁핍해 보이지도 않았었다. 유흥비가 아쉬웠던 것일까.

그러다 그 친구는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는지 어느 날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 친구에게 아무 내색을 않고 같은 과 친구로서 상대해 주었었다. 그 친구는 우리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친구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그 친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조금은 궁금하다.

2학년이 되어 물리학과 후배에게 인사차 강의실에 들어온 물리학과 4학년 과대표가 "여러분들 중에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고민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오라"라고 말했었다. 알고 보니 그 선배도 프락치였다.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싶다. 동급생이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해야 하는 시절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이지 않다. 눈앞까지 와있던 민주화가 좌절된 배신의 시대에 더하여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를 살아야 했으니 그만큼 그 시대를 살아가는 풍경이 삭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어쩌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에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으니 불편부당한 현실을 인내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