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딘가에서

by 밤과 꿈

앞서 말한 바 있지만 1980년대 초에 우리가 가졌던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비록 우리에게 아픔을 안겨주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의 선택을 우리는 당위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그 믿음의 대가가 아픈 것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노트에 '민중 꺼'라고 적으면서까지 민중의 삶에 애정을 보였던 최ㅇ숙 선배는 이후에 같은 교도소 출신 남학생과 결혼,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하고자 했던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을 떠나야 했던 만큼 선배의 상처가 컸나 보다.

홀로 외로운 시위를 벌이다 투옥, 또다시 위장 취업하여 의식화 학습으로 두 번째 옥살이를 했던 사학과의 김ㅇ철을 동료의 결혼식장에서 볼 수 있었다. 공작 기계에 손가락을 잃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고난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지금까지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영혼의 깊은 상처를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최근까지도 이십 대에 겪었던 혼돈과 아픔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에 대한 확증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모두가 가졌던 자괴감일 것이다. 특히 촛불에 의해 탄생한 진보 정권이 보여주는 난맥상을 볼 때 내 마음은 자괴감을 넘어 분노와 허탈로 가득 찬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감정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초의 암울함을 정의감 하나로 견디었던 우리 모두의 마음이리라고 믿고 싶다.


우리나라의 진보 운동은 이른바 '조국 사태'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보가 표방하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진보 진영 스스로가 허물어뜨린 대표적인 사건이 조국 사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진보를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문제 삼았다. 조국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별건 수사를 무리하게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이 사태를 법적인 문제, 혹은 진영 논리라는 것을 표방한 정치적 사건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볼 때 이 사태의 본질은 진보를 신념으로 하는 사람의 위선적인 삶에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신념은 얼마든지 변하거나 포기될 수는 있다. 우리는 이것을 변절이라고 부르지만,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조국 씨는 '강남 좌파'라고 불릴 만큼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왔고, 본인 스스로도 이를 부정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로 드러난 실상은 그에 대하여 믿고 있었던 삶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조차도 나약한 지식인의 위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다 큰 문제는 드러난 문제와 나쁜 여론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권에서 그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진보 정권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로써 그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조국 사태를 통해 이 땅에서의 진보 운동의 황혼을 보았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진보의 몰락을 가져온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 또한 진보적 가치를 신념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땅에서 어렵게 지속되었던 진보 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현실 정치의 이해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이었다.


아직도 이 땅에서 진보의 가치는 유효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보수의 가치가 '자유'라면 진보의 가치는 '평등'이다. 자본주의는 자유 경쟁이라는 시장 경제의 원리로 성장해왔다. 자본의 축적으로 기업이 성장하듯 한 개인의 신분 또한 자유로운 부의 실현으로 상승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층 간 불평등은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고, 이에 '평등'이라는 진보의 가치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가 고착화된 사회 현실에서 자유 경쟁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한 그 사회는 불평등한 구조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며, 국가와 국가 간에도 '빈익빈 부익부'는 심화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불평등의 해소는 역사가 바라보아야 할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보란 아직 구현되지 않은 평등 사회라는, 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뜻한다고 하겠다.


나는 역사적 방향을 잃어버린 진보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그들은 이미 진보의 궤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진보는 언제나 가지지 못한 자, 억눌린 자와 같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것은 사회 정책의 실현 이전에 마음이 먼저 약자에게 머물고 있어야 함을 뜻한다. 이에 반하여 기득권에게 주어지는 과실을 맛본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진보의 윤리가 강조되는 까닭이다. 고 노희찬 의원이 보여준 자기반성과 성찰의 모습에서 진보 정치인의 진면목을 본다. 그의 죽음이 아쉬운 이유다.

더불어 값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우리의 모습을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초의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그 시대에 대해서도 연민의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다. 모두가 불쌍하다.

그렇게 도도한 역사의 흐름 안에 한 시대의 동인(動因 )으로서 우리의 역할이 끝났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 역사를 바라보는 형형한 시선만큼은 거두지 않고 살아갔으면 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래된 우리의 신념을 지키는 우리의 마지막 행로이리라 믿는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카(E. H. Carr)의 말처럼 젊은 날의 신념을 오늘도 붙들고 살아가도록 하자. 젊은 날에 같은 신념을 공유했고, 지금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을 내 젊은 날의 동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