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감사가 넘치다

by 밤과 꿈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있다. 또한 마음속에 옹이가 되어 떠나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1980년대 초 내 젊은 날의 기억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아파서 젊은 날의 이야기를 글로써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그 기억들은 글이 되지 못했다. 시절의 아픈 기억들과 다시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오랜 시간 내 인생에서 20대의 시절이 가지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시절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이후에 맞이하는 삶의 의미 또한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내 삶의 연대기에 있어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그 시절의 의미를 찾아 헤매었지만 해답을 구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뜻하지 않은 삶의 자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문제는 때때로 전혀 다른 시기와 자리에서 해답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미처 맞추지 못한 인생의 퍼즐을 비로소 맞추게 되는 뜻밖의 감격이 있다. 나아가서 인생이라는 것이 내 의지로만 안 되는 것으로 인생이 보이지 않는 힘이나 절대적인 존재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내 젊은 날의 이야기는 앞에서 마감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삶의 시선은 하나님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기에 마침글에 이 글을 덧붙인다.


내 젊은 날의 의미를 찾게 된 계기는 지난 2018년, 88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가신 어머니의 힘든 시기를 곁에서 함께 한 경험으로부터 왔다. 나는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7년 동안 어머니의 곁을 지켰었다. 화장실 가는 것은 물론, 혼자서는 식사도 드실 수 없는 중증 장애를 가지고 7년이라는 시간을 힘들게 사신 어머니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어머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어머니의 힘든 시간 동안 자식으로서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라고. 그러나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 그만 이 말을 어머니께 직접 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와는 분명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평소에도 어머니에게 잘하는 말이지만 "엄마, 사랑해요"라고 내가 어머니에게 말했을 때 어머니께서도 힘들게 "사...랑...해...요"라고 말씀하셨다. 뇌졸중으로 언어 장애가 있는 어머니께서는 평소에는 사랑한다는 내 말에 그저 웃으시든지, "그래"라는 말씀만 하셨는데 그날은 힘써 작별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날, 어머니께 내 마음속의 모든 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내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어머니를 여의기 훨씬 이전에 사랑하는 가족의 한 사람을 떠나보낸 또 한 번의 아픈 기억이 있다. 밀레니엄을 일 년 앞둔 1999년 1월에 작은 형님께서 뇌출혈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당시 나로서는 시작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형님의 일을 돕기 위해 곁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것은 내가 도움이 되어 형님께서 재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형님을 떠나보냈다는 것이다. 언제나 덩치가 듬직한 형님이었지만 곁에서 함께 있으면서 형님의 연약하고 고독한 내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면과 같이 고독한 현실을 살다 가셨다. 형님으로 인한 두 건의 연대 보증으로 나 또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니 형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입관할 때 누워있는 형님의 모습을 보고 원망의 감정을 모두 지웠다. 180cm라는 당시로서는 큰 형님의 키 때문에 보지 못했던,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가 무색하게 드러난 정수리를 보면서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형님을 생각하니 원망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곁을 지킨 보람과는 달리 형님의 곁을 지킨 상처는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나 작은 형님이나 곁에서 함께 할 때 내 삶의 중심은 두 사람에게 맞춰져 있었다. 여기서 깊고 많은 사연 모두를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내만큼은 내 말의 의미를 십분 이해할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 아무리 혈육 지간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전적인 집중이다. 그것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계산이 없는 사랑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내 경험이 주는 확신으로 볼 때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자기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은 희생으로서 완성된다. 예수의 사랑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1년 후 나는 내가 쉽지 않은 사랑의 체험을 두 번씩이나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마음에 뜨겁게 각인되는 말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실제를 깨닫는 것, 신앙의 근본이다. 평소에 친숙한 구절로서가 아니라 마음의 울림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셔서 내가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가슴 뜨거운 감격이 있었다. 심지어 아내를 만나 신앙을 갖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내 외로운 삶을 지켜보시고 나를 하나님께로 이끄셨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인생의 해답을 신앙 안에서 찾게 되는 감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 젊은 날에 아픔으로 남은 사랑, 즉 한 여자에 대한, 그리고 1980년대라는 시대에 대한 외사랑까지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희생으로서 완성되는 사랑 속에서 치유되고 회복되리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글을 쓸 때 먼저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내 젊은 날이 아파서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은혜에 힘을 얻어 내 젊은 날의 아픈 기억들을 조심스레 들추어 글을 쓰게 되는 용기를 내게 되었다.

하늘은 푸르고 가을의 밝은 햇살이 내 몸을 따사롭게 휘감는 오늘 아침, 젊은 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리고 내 삶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넘쳐 지금 풍요의 시간에 머물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다른 공간에 있으나 그리운 이름과 그리운 시간들을 가졌으니 내가 부요(富饒)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 안에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