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後)

by 밤과 꿈

앞서 신변 정리 차원에서 시위가 계획되고 이루어졌다고 언급했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다시 한번 그 속내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소수의 몸부림으로 끝날 시위를 결행해야 하는 데에는 당연한 내면의 요구가 있었다.

4학년이 되면 학생운동 조직 내의 모든 일을 3학년에게 물려주고 직접적인 관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학생운동은 노동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향점에 따라 학교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 모색의 일환으로 시위를 결행하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고졸자의 30% 정도만 대학을 갈 수 있었던 당시, 학력에 따른 기회의 불균등이 명확하고,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지극히 적은 사회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학생은 기득권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회 현실에서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기득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많은 번민과 갈등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었다. 시위를 결행함으로써 번민과 갈등을 뒤로하고 강제적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 노동자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시위의 목적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런 측면이 다분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최ㅇ숙 선배의 학습 노트에는 '민중 꺼'라고 선배가 직접 적어 놓았었다. 자신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미래가 민중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가 민중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시각 자체가 오만일 수가 있으며, 민중과 함께 한다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민중과 일체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럴 때 시위는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는 유용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 자체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삶과 가치관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인격은 견고하여 쉽게 허물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식인이 가진 속성과 마찬가지로 대학생 또한 (당시에는) 선택받은 소수로서의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이 자칫 소영웅주의로 빠지고, 지적 오만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었다.


몇 년 뒤의 일이지만 운동권 내 동기생 두 사람의 결혼식에서 만난 한 여자 후배가 털어놓은 심경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아니면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 현장에 뛰어든 그 후배는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노조 일을 맡아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떤 회사이든지 노조 간부가 되면 노조 사무실에서 노조 업무를 맡아보게 되어 노동 현장과는 거리를 두게 마련이다. 그 후배는 이 사실에 심적으로 갈등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노동 운동을 한답시고 노동 현장을 떠나 있는 것이, 노동의 수고를 감당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이 자신이 꿈꾸던 노동자의 삶과는 달라 회의가 든다"라고 말하는 후배가 대견하면서, 그 삶을 함께 가지 못하고 있는 선배로서 후배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학교를 떠나서도 노동운동을 지속하면서 자기 점검과 성찰을 잊지 않는 진정한 진보의 모습을 그 후배에게서 보았다.

스스로가 기득권이 되어버린 오늘의 노조와 진보 정치권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점검해야 할 사안이다.


나는 당시 현실 사회의 변화와 현실 참여는 역사의 진행이라는 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모두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動因)으로 인식되어야 했다.

f=ma, 뉴턴의 제2 운동법칙, 혹은 가속도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고전역학의 유명한 공식으로 역사의 동인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역사의 발전을 가져오는 힘은 그 동인의 축적에 따른다는 것이다. 역사의 발전을 가져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인적 자원(m)이 늘어날수록 변화를 가져오는 시간을 단축(a)시켜 역사 발전의 파괴력(f)은 커질 것이다.

이때 역사의 동인으로서 자각된 개인의 운동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 속에 스며들어가는 것으로, 역사 발전에 참여하는 순간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개인은 더 이상 의미가 되지 못하고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 즉 에너지화한다는 것, 이것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 현실 참여를 바라보는 나의 역사 인식이었다.

이처럼 역사의 발전을 신념으로 운동의 도도한 흐름 속에 스스로를 산화시킬 때 소영웅주의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운동의 순수성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역사의 당위라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공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보기에 따라서는 무모한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그 실천에 도달한 대표적인 예를 예수와 체 게바라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인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예수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 구원의 소명 의식을 지니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 또한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의대생으로서 남의 나라 쿠바의 혁명에 참여, 새로 구성된 정부의 중책을 맡았지만 이를 버리고 홀로 볼리비아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미국 CIA에 의해 사살되었다. 당시 일국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국제 사회주의의 연대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을 때 억눌린 아메리카 민중의 해방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체 게바라의 순수한 영혼이 있었기에 그는 지금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순수한 신념은 "나는 해방자가 아니다. 해방자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민중을 해방시키는 건 그들 자신이다"라는 그의 말에 잘 나타나고 있다. 민중을 위해 행동한다는 소영웅주의는 그의 생애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와 운동의 주체라는 다소 무거운 과제는 나에게서 줄곧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3학년에서 4학년을 향하는 무렵, 이 화두를 붙들고 고민을 거듭했지만 자신을 역사의 동인으로 던지기에는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이 또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자리한 넓고도 깊은 간극이었다. 계속된 고민은 이 간극을 거듭 확인시켜 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