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시인은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시인의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에 수록된 시들의 정서도 사랑이 주조(主潮)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시인의 이 시집에서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 사이의 거리이다.
"보고 싶어 찾아가던 그 집 앞/ 아직도 서성거리는 모든 발걸음을 거두겠다"('사랑의 길' 부분)와 같은 것이나
"그 모든 것들을/ 시린 눈으로 바라봐야만 하는"('활' 부분)등에서 우리는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 사이에 일정하게 유지되는 거리를 감지한다.이것은 현재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상정(想定)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한 생을 다해 기다려 본 적이 있냐고"('나무' 부분)에 이르러서는 시적 화자의 사랑이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시적 화자에게는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아마도 영원히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사랑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그리움, 시적 대상에 대한 동경의 감정이다.
"꽃 진 자리/ 신열처럼 피어나는/ 그리움 이길 수 없네" ('꽃' 부분)에서 막막한 그리움의 극점을 느낀다.
그리고 "기다리기 위해 그리워한 게 아니다/ 그리워하기 위해 기다렸다" ('이 사랑' 부분)에 이르러서는 시적 화자의 시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은 운명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점에서 이창훈 시인의 시에서 낭만주의 시대의 동경 문학과 유사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낭만주의의 정신적 기조는 바로 '동경'이다. 낭만주의의 선구자인 철학자 피히테는 동경을 일컬어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충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동경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서의 사랑을 갈망한다. 마침 시인의 시에서 이에 적합한 표현을 발견한다.
"저 너머를 동경하다/ 아무도 나서지 않은 길을 냈다" ('다리' 부분)에서 시인은 여지없이 '낭만적인' 시인의 면모를 드러낸다.
여기서 '낭만주의' 대신에 '낭만'이라는표현을 쓴 것은 낭만주의라는 용어를 18세기 중반 독일 문학에서 등장하여 19세기에 걸쳐 왕성했던 주류 문예 사조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에 대해서는 한 시대를 대변했던 문예 사조로서 한정 지어 이해할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가 서구의 예술사를 관통하는 아폴론적 혹은 고전적 경향과 디오니소스적 혹은 낭만적인 경향의 한 축으로서 현재까지 상존하는 창작 동기로 이해하는 면도 있으므로 이런 시각으로 이창훈 시인의 시를 이해하기로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그래서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겨야 하는 사랑은 고통이다. 찢어지는 아픔을 수반한다. 시인은 이를
네게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다
내가 사랑할 단 한 사람이
더 이상 없어서다
('통증' 전문)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와 같은 사랑의 아픔에 대하여 감정을 과하게 노출하는 법이 없다. 필자가 볼 때 사물에 시적 화자의 고통을 이입한 시가 그나마 아픈 감정이 격하게 드러나 있는 경우로 보인다.
당신을 사랑하려면 칼을 물어야 했다
한 그루 나무가
제 가슴 한 켠에 시퍼런 도끼를 허락하듯이
('도마' 전문)와 같은 시가 그렇고,
심지어'고슴도치'와 같은 시에서는
누군가 박은 못처럼
밖에서 들어와 박힌 것이 아니다
가시는
내 안의 뿌리에서 돋아난 것이다
('고슴도치' 전문)사랑의 아픔이 내재적인 것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사랑을 대하는 시인의 관점이 관조적이고 내재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관점은 시를 읽는 독자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서정시인으로서 시인이 가진 미덕이라고 하겠다.이러한 시인의 따뜻한 서정은 교육자로서 교육 현장의 체험이 묻어나는 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시험은 우리의 머리를 시험할 순 있지만/ 결코 우리의 가슴을 시험할 순 없다" ('교실' 부분)
영원히 지속되는 그리움의 대상을 바라봐야 하는 천형과 같은 고독을 시적 화자를 빌어 노래하는 구도자의 모습, 그것이 낭만주의 시인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이창훈 시인은 낭만이 사라진 이 시대에 희귀한 낭만주의자로 살아가면서 사랑을 찾는 구도자라고 하겠다. '시인'이라는 시에 이창훈 시인의 구도의 길이 잘 나타나 있다. 끝으로 이 시를 옮겨 적으면서 시인의 외로운 길에 응원의 마음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