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동기를 살아간 시인들의 치열한 모색

- 러시아 현대대표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를 읽고

by 밤과 꿈

우리에게 러시아 문학은 유독 친숙해서 많은 독자에 의해 널리 읽히고 있다. 문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 치고 똘스또이의 '부활'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러시아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두 문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방대한 길이로 해서 미처 읽지 못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대작들이 그리고 있는 거대한 서사와 인간의 내면 묘사는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 경우에는 숄로호프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이 그리는 사실적이고도 치밀한 묘사와 역사의 전환기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장엄한 서사를 잊을 수가 없다.

이에 비하여 러시아의 시문학은 그 소개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비단 러시아 시문학뿐만 아니라 외국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각국의 언어가 가진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다는 점이 우선되는 이유이겠지만 러시아 혁명기를 거치면서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마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러시아 혁명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러시아 시의 흐름을 개관할 수 있는 시선집이 있어 소개한다.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로 출간되어있는 '러시아 현대대표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1890년대부터 1920년대 초까지 러시아에서 전개되었던 모더니즘 시운동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현대시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러시아 시문학은 상징주의, 아끄메이즘, 미래주의, 이미지즘과 같은 유파들의 활발한 활동 때문에 르네상스를 구가하게 된다.

먼저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상징주의 시는 "인간의 감각과 정신을 가시적이고 경험적인 물질세계에 가둬버리는 기존의 문학과는 달리 상상력과 개성의 자유를 극대화"한다는 취지에서 시 형식의 측면에서 "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균형과 조화, 시어의 명료함을 중시"하는 전통을 탈피, 초월적 세계를 암시하는 시어의 개발에 주력했다.

러시아 상징주의 시의 대표적인 1세대 시인인 꼰스딴찐 드미뜨리예비치 발몬뜨의 시 '바람'을 통해 상징주의 시의 면모를 확인한다.

나는 현재에 연연하며 살 수 없네.
나는 불안한 꿈들을 사랑하네,
타는 듯한 태양 빛 아래,
축축하고 희미한 달빛 아래.
나는 현재에 연연하며 살고 싶지 않네.
나는 귀 기울이네, 암시적인 현의 울림에,
꽃과 나무의 웅성거림에,
바다 물결이 전하는 옛이야기에.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욕망으로 괴로워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네.
안개 자욱한 미명 속에 한숨 쉬고
저녁 먹구름 속을 떠다니네.
종종 예기치 않은 희열 속에서
입맞춤으로 잎사귀들 불안케 하네.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질주 속에 살아가네.
끝 모를 불안 속에 살아가네.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발몬뜨의 시에는 사실적인 현실의 상을 배척한 '미적 상상력'이 자리 잡게 된다. 그의 시에서는 "꿈이 현실을 압도하고 조형성보다는 음악성이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꿈의 세계는 비가시적인 모호성, 암시성을 지닌, 유동적인 시적 이미지로 가득한데 '바람'이라는 시에서는 바람의 질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리고 "떠다니는 바람의 부유하는 이미지"는 시적 공간을 지극히 불안정한 것으로 만들게 된다.

반면 안나 안드레예브나 아흐마또바의 시는 아끄메이즘 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아끄메이즘의 창시자 니꼴라이 구밀료프와 결혼,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그녀의 남편이 볼셰비키의 적으로 간주, 총살당한 이후로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되어 생계의 위협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한다. 그리고 반동으로 지목되어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었다가 1950년대 후반에 복권되었다.

가시적이고 경험적인 현실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명료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지향한 아끄메이즘 시의 특성대로 그녀의 시는 "구체적인 사물과 일상적인 체험들을 소박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있는 바 그녀의 '나들이'라는 시에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모자의 깃털이 마차 지붕에 스쳤다.
그이의 두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슴이 저미었다, 슬픔의
이유도 모른 채.

바람이 잦아든 저녁은 우수에 잠겨
흐린 하늘 아래 미동도 없다.
마치 먹물로 그린 듯한
낡은 앨범 속 불로뉴 숲.

휘발유와 라일락 냄새,
긴장이 감도는 평정......
그이는 또다시 내 무릎을 살짝 만졌다
거의 떨리지 않는 손으로.

여성 시인을 언급한 만큼 모더니즘 시 운동에 속한 가장 독창적인 여성 시인인 마리나 이바노브나 쯔베따예바를 빼놓을 수 없다.

쯔베따예바는 어릴 때부터 독서와 공상에 빠져 고립된 자아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를 통해 시인이 개인적으로 구축한 신화와 상징들을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시는 비극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와 같은 시의 형성에는 시인의 굴곡진 개인사와도 연관이 있다. 1917년 10월혁명 발발 이후 볼셰비키 적군에 맞선 백군에 가담해 내전에 참전한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두 딸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극심한 굶주림을 경험, 결국 둘째 딸을 잃게 된다. 그리고 국외로 망명한 남편을 따라 러시아를 탈출, 망명객의 힘든 시간을 겪었다. 1939년 노선을 전향한 남편을 따라 러시아로 돌아가지만 남편은 총살형을 당하고, 독소전쟁이 발발한 1941년 8월에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는다.

쯔베따예바의 시는 일반적인 시의 관례를 무시하고 독창적인 연상이 점철된 전위적인 텍스트를 형성해 가장 난해한 시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나마 전위성이 덜한 시 '너무 일찍 씌어진 나의 시들'을 읽고 그녀의 시가 가진 특성을 계속 다루기로 한다.

너무 일찍 씌어진 나의 시들,
내가 시인인 줄 나도 몰랐던 시절,
분수에서 물이 솟구치듯
로켓에서 불이 쏟아지듯 터져나온 나의 시들,

꿈과 훈향 깃든 성당 안으로
작은 악마들처럼 불시에 잠입한
청춘과 죽음을 노래한 나의 시들!

먼지에 덮인 채 서점마다 널려 있는 나의 시들,
아무도 사지 않고, 아무도 사지 않을
나의 시들에게도, 값비싼 포도주가 그렇듯,
제 차례가 오겠지.

이 시에서 쯔베따예바의 자아는 양극단을 표용하려는 듯 모순적이다. "성당 안으로 작은 악마"들이 잠입하고, "청춘과 죽음"을 노래하는 것처럼 모순된 이미지가 결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발현이 독창적이어서 시가 주는 시적 울림의 파장을 확대하고 있다.

쯔베따예바의 시에 대한 "시인 쯔베따예바와 인간 쯔베따예바는 일치한다. 그녀에게 있어 예술과 존재 간에는 쉼표도, 심지어 이음표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쯔베따예바의 시적 감정의 정직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무엇보다도 그녀가 느낀 감정의 직설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그녀의 시는 어렵지만 그만큼 독창적이고, 급박한 시의 리듬이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국내에 쯔베따예바의 시집 '끝의 시'가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밝혀 둔다.


쯔베따예바와 마찬가지로 자의식이 강한 시를 쓴 또 한 사람의 시인으로 블라지미르 블라지미로비치 마야꼽스키를 들 수 있다. 마야꼽스키는 시인이 되기 이전에 미술에 재능을 나타내어 1911년에 입체파 미래주의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2년에는 "오직 우리만이 우리 시대의 얼굴이다...... 뿌시킨, 도스토옙스키, 똘스또이 등을 현대라는 이름의 기선 밖으로 던져버려라"라는 유명한 문구가 담긴 미래주의 선언문인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를 19세의 청년 마야꼽스키와 동료들이 내놓는다. 이 진술은 "미래주의라는 유파의 강령이면서 동시에 20세기 아방가르드적 미의식의 선포이기도 하다."

미래주의의 정신에 따라 마야꼽스키의 시는 전위적이고 혁명적인 정신으로 가득하다. 특히 마야꼽스키가 속했던 입체파 미래주의는 피카소의 회화가 가진 아방가르드한 정신과 시점의 해체를 시에 적용하려고 한 만큼 '당신들은 할 수 있는가?'와 같은 마야꼽스키의 회화적인 초기 시에서도 입체파적인 지향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당장 컵의 물감을 끼얹어
일상의 지도를 문댔다.
나는 교병 접시에 담긴
대양의 비뚤어진 광대뼈를 보여주었고
양철 물고기의 비늘에서
새로운 입술의 부름을 읽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야상곡을 연주할 수
있는가.
홈통의 플루트로?

얼핏 이해가 안 되는 난해한 시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행위, 혹은 회화 그 자체에 대한 시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입술의 부름"은 미래주의 미학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고, "대양의 비뚤어진 광대뼈"나 "야상곡", "플루트"가 새로운 예술을 지칭하는 반면, "일상의 지도"나 "양철 물고기", "홈통"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예술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17년 10월혁명을 계기로 마야꼽스키는 전위적인 모더니스트에서 혁명의 전사로 변모한다. "그의 시는 노골적으로 정치를 운위하며 예술 역시 '노동'이자 '기술'임을 설파한다." 그러나 마야꼽스키의 시는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여전히 "시와 비시의 경계를 부숴버림으로써 전통적인 '고상한' 시의 규율을 전복시키는 전략은 혁명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그러나 마야꼽스키의 시는 새로 소비에트 문단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러시아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 으로부터 부르주아 형식주의라는 비판에 직면, 문단으로부터 고립되고, 여성과의 사랑도 파국으로 치달아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몇몇 대표적인 러시아 현대 시인들을 살펴보았지만 이 시선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인 예브게니 옙뚜센꼬,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를 비롯한 15명의 시인이 소개되어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치열한 모더니즘 운동도 흥미롭지만 뿌시킨의 전통적인 서정이 지닌 매력을 외면할 수 없는 만큼 모더니즘의 시기에 고향을 잃은 국외자의 심정으로 러시아의 농촌을 시의 주제로 한 시인이 언급되어 있어 끝으로 그의 시를 소개한다. 그 시인은 쎄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으로 레닌그라드의 호텔방에서 자신의 피로 쓴 유고 시를 남긴 채 목을 매 자살로서 생을 마감했다. 소개한 시인들 중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시인이 유독 많다. 이 세상은 시인이 살아가기에는 힘겨운 곳인가 보다. 끝으로 소개하는 예세닌의 시 '안녕, 내 친구여, 잘 있게나'가 바로 자살 직전 피로 쓴 유고 시이다. 한편 예세닌의 이 시에 대한 응답으로 본인도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마야꼽스키는 "이승에서 죽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네, 사는 게 훨씬 어렵지"라는 시구를 남겼다고 한다.

인명의 표기는 원어의 발음에 근접하게 표기한 이 책의 번역을 그대로 따랐음을 밝힌다.

안녕, 내 친구여, 잘 있게나.
사랑스러운 벗이여, 너는 내 가슴속에 있네.
예정된 이별은
먼 훗날 만남을 약속한다네.

안녕, 내 친구여, 악수도 당부의 말도 접고,
슬퍼도 말고, 애달픈 표정도 짓지 말게나.
이승에서 죽는 건 새삼스러울 거 없는 일.
그러나 물론, 사는 것 또한 새로울 거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