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현대대표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를 읽고
나는 현재에 연연하며 살 수 없네.
나는 불안한 꿈들을 사랑하네,
타는 듯한 태양 빛 아래,
축축하고 희미한 달빛 아래.
나는 현재에 연연하며 살고 싶지 않네.
나는 귀 기울이네, 암시적인 현의 울림에,
꽃과 나무의 웅성거림에,
바다 물결이 전하는 옛이야기에.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욕망으로 괴로워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네.
안개 자욱한 미명 속에 한숨 쉬고
저녁 먹구름 속을 떠다니네.
종종 예기치 않은 희열 속에서
입맞춤으로 잎사귀들 불안케 하네.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질주 속에 살아가네.
끝 모를 불안 속에 살아가네.
모자의 깃털이 마차 지붕에 스쳤다.
그이의 두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슴이 저미었다, 슬픔의
이유도 모른 채.
바람이 잦아든 저녁은 우수에 잠겨
흐린 하늘 아래 미동도 없다.
마치 먹물로 그린 듯한
낡은 앨범 속 불로뉴 숲.
휘발유와 라일락 냄새,
긴장이 감도는 평정......
그이는 또다시 내 무릎을 살짝 만졌다
거의 떨리지 않는 손으로.
너무 일찍 씌어진 나의 시들,
내가 시인인 줄 나도 몰랐던 시절,
분수에서 물이 솟구치듯
로켓에서 불이 쏟아지듯 터져나온 나의 시들,
꿈과 훈향 깃든 성당 안으로
작은 악마들처럼 불시에 잠입한
청춘과 죽음을 노래한 나의 시들!
먼지에 덮인 채 서점마다 널려 있는 나의 시들,
아무도 사지 않고, 아무도 사지 않을
나의 시들에게도, 값비싼 포도주가 그렇듯,
제 차례가 오겠지.
나는 당장 컵의 물감을 끼얹어
일상의 지도를 문댔다.
나는 교병 접시에 담긴
대양의 비뚤어진 광대뼈를 보여주었고
양철 물고기의 비늘에서
새로운 입술의 부름을 읽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야상곡을 연주할 수
있는가.
홈통의 플루트로?
안녕, 내 친구여, 잘 있게나.
사랑스러운 벗이여, 너는 내 가슴속에 있네.
예정된 이별은
먼 훗날 만남을 약속한다네.
안녕, 내 친구여, 악수도 당부의 말도 접고,
슬퍼도 말고, 애달픈 표정도 짓지 말게나.
이승에서 죽는 건 새삼스러울 거 없는 일.
그러나 물론, 사는 것 또한 새로울 거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