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희원(希願)을 담은 초혼(招魂)의 글

-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by 밤과 꿈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한강은 제주 4.3사건과 마주한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지 5년 만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인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 "2014년 6월에 이 책의 두 페이지를 썼다. 2018년 세밑에야 그 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으니, 이 소설과 내 삶이 묶여 있던 시간을 칠 년이라고 해야 할지 삼 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집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경험이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는 역사적인 사실, 그것도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비극적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구성할 때 작가에게 주어지는 부담감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물론 작가는 이미 장편소설 '소년이 간다'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쓴 바가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작가는 글로서 다루기에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 두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작가로서의 어떤 소명이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대하여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강은 하게 만든다. '5월 광주'에 이어 '제주 4.3'에도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고 믿게 된다"라고 적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적확하게'라는 표현을 망설임 없이 쓸 수 있는 것은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작가가 구사한 서사의 구성이 설득력이 있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에서 작가는 5월 광주의 상처를 곧바로 투시하고, 그날 희생된 생명들이 못다 한 말들을 '어린 새'로 상징되는 5월의 희생자인 정대의 영혼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점으로 변화를 주면서 5월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작가의 증언이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소설을 붙들고 있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불편함은 5월의 비극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 피해자에 대한 슬픔이 섞여있는 감정이었다. 그만큼 '소년이 온다'는 권력을 위해 가해지는 잔인한 폭력의 서사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한편, '5월의 광주'와 함께 국가 권력에 의해 민간인에게 부당하게 가해진 대표적인 학살 사건인 '제주 4.3'을 소재로 한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소설 '소년이 온다'이 가진 사실적인 서사는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반세기를 지난 일로 그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못한 상태로 지금껏 시간이 흘러왔기에 사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기인한 한계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의도한 집필 방향에서 보다 큰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하여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다음과 같이 이 소설의 의도하는 바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하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새는 폭력에 의해 멸절된 생명을 의미하는 메타포, 즉 상징적인 존재 혹은 형상으로 서사의 얼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동 인물로서의 경하와 그녀의 친구 인선이 화자가 되어 소설의 전개를 이끌고 있으며,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멸절된 생명의 의식은 사실적 공간이 아닌 문학적 상상력의 공간에서 인식된다. 이 점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소년이 온다'에 비해 독자로 하여금 모호한 인상을 주게 되는 요인이 된다고 하겠다.

친구 인선의 강박에 의해 떠나게 되는, 내키지 않은 제주행에서 경하가 폭설과 눈보라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후, 그 너머에서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결말에서 일종의 주술적 체험과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이는 경하가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도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인상에서 복선처럼 잘 나타나 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섬의 바람은 마치 배음처럼 언제나 깔려 있는 무엇이었다. 거세게 몰아치든 온화하게 나무를 쓸고 가든, 드물게 침묵할 때조차 그것의 존재가 느껴졌다.

정적의 뒷면에 먹 자국처럼 배어 있는, 언제든 형상을 이루며 선명해질 수 있는 그림자 같은 그걸 걸음마다 느꼈다.

이와 같은 작가의 섬세한 문장에 의해 폭설과 눈보라에 휩싸인 제주의 중산간 지방은 반세기 전에 자행되었던 폭력의 희생자들을 불러 그 한스러움을 해원(解寃)하고, 사랑을 회복하는 초혼의 마당이 된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상징적 공간의 묘사를 통해 제주 4.3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 한강의 역량과 노력에 경탄한다.

등단 이후 줄곧 "어둠과 폭력의 세계 속에 상처 입은 존재들을 섬세하게 그려온" 작가는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매번 사력을 다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