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고통이 되었다

- 이언 보스트리지 著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읽고

by 밤과 꿈

겨울이면 반드시 듣게 되는 음악이 슈베르트가 작곡한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이다. 24곡의 가곡으로 이루어진 이 연가곡집은 원제가 '겨울 여행'이지만 우리에게는 '겨울 나그네'라는 제목이 오래 사용되어 친숙해진 상태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슈베르트라면 '겨울 나그네'를 떠올릴 만큼 익숙한 음악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암울한 내용의 음악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안 듣게 되지만 겨울이 되면 통과의례처럼 집중해서 한 번을 듣게 된다. 집중해서라는 뜻은 텍스트와 악보를 선택해서 분석해서 듣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2년 전부터 텍스트로 선택해서 보는 책으로 이언 보스트리지(Ian Bostridge)가 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Schubert's Winter Journey)'가 있다. 이언 보스트리지는 영국의 테너 가수로 특히 독일 가곡 분야에서 정상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특히 이언 보스트리지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교수로 있던 1993년 29살의 나이로 뒤늦게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이언 보스트리지의 인문학적인 소양이 이 책에는 놀랍도록 스며들어 있다. 물론 학자 출신답게 치밀한 사전 조사가 있었겠지만 이언 보스트리지가 지닌 폭넓은 지식과 안목, 그리고 세계적인 성악가로서의 악곡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나로 하여금 매년 이 책을 거듭 펼치게 한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슈베르트가 쓴 '나의 꿈'이라는 제목의 글 일부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슈베르트의 삶과 예술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그리고 실연한 젊은이가 나그네가 되어 연인의 곁을 떠나는 방랑이라는 '겨울 나그네'의 주제와도 맞아떨어지는 언급이다.

슈베르트는 31살의 이른 나이에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그리고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음악가로서 자신의 피아노를 가져본 적도 없이 평생 친구들의 집을 떠돌았다. 이러한 슈베르트의 삶의 모습과 함께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이행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베토벤에게 가려진 무명 음악가로서의 모습이 겹쳐 가난하고 불운한, 그러나 낭만주의의 문을 연 내성적인 재능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슈베르트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슈베르트가 완전 무명의 음악가가 아니었고 금전적인 수입도 괜찮았다고 한다. 다만 그 수입을 친구들과의 유흥비로 탕진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슈베르트의 사인(死因)이 방탕한 생활로 얻은 매독이었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 되었다. 이에 더하여 이언 보스트리지는 슈베르트의 동성애 성향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언 보스트리지는 역사학자로서의 안목으로 가곡집 '겨울 나그네'에 드리워진 암울한 분위기에는 비드마이어 시대의 오스트리아에 드리워진 실존적 불안감이 배경으로 나타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겨울 나그네'에는 시대의 은유가 내재되어 있으며, 악곡의 전반에 걸쳐 표현되고 있는 '소외'는 지금의 시대상과 맞물려 '겨울 나그네'라는 낭만주의 음악이 현대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 등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언 보스트리지의 독창적인 시각이 흥미롭다.

"30년 넘게 무대에서 이 곡을 부른 성악가로서의 경험과 유럽 근대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서의 지식이 여기서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가 놀란 것은 보스트리지의 왕성한 호기심과 세세한 부분을 파고드는 집요함이었다"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텍스트를 고증하는 문헌의 방대함에서 이언 보스트리지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원서의 부제를 '집념의 해부'라고 했을까.


이언 보스트리지는 이 책에서 가곡집 '겨울 나그네'가 지니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 글에서 연주자로서의 경험과 감정을 빠뜨리지 않는다.

'겨울 나그네'와 같은 연가곡은 거리를 두며 경외하는 음악 연주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현란한 기교는 숨겨지고 보컬 솜씨는 과도하게 나서서 주목을 끄는 법이 없다. 스스로를 비꼬지도 않는다. 청중이 자신도 같이 노래하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투사되는 주관성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청중은 무대 위에서 피아노와 목소리가 소리로 구현하고 가수가 맡아서 투사하는 페르소나에 일체감을 느낀다.

사족이겠지만 이 책을 떠나 음악적으로 이 가곡집의 마지막 노래인 '거리의 악사'는 이 가곡집의 24곡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도 의미심장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선율은 단조롭고 전곡의 내레이터라고 할 나그네는 결국 체념한 듯 가장 암울한 노래를 들려준다. 이 점에 대하여 이언 보스트리지는 역시 정상의 가수, 해석자에 어울리는 언급을 한다.

음악이라기보다 차라리 반 음악이라고 해야 할 곡이다. 실제로 아무것도 없다. 살은 없고 앙상한 골격만 남았다. 화성적으로 빈약하고 거의가 단순한 반복으로 구성된다...... 슈베르트는 우리에게 가난한 음악을 선사한다. 공허함과 전면적으로 마주하는 이 곡에서 가수는 숨을 곳이 없다.

그리고 나그네는 거리의 악사와의 동행을 생각하며 음악은, 나그네의 여정은 끝나지 않고 열린 공간으로 향한다. 그 열린 공간에 무엇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언제나 나그네는 안식을 꿈꾸고 있지만.

매독균이 온몸에 퍼져 죽음의 그림자를 가까이 느끼던 슈베르트의 마음도 이러했으리라.


이언 보스트리지는 이 책으로 2015년 최고의 논픽션에게 주어지는 영국의 더프 쿠퍼 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이언 보스트리지가 부른, 민요적인 선율로 친숙한 '보리수'와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 영상을 올린다. 연주회장의 영상이 아니라 특별히 연출한 영상으로 나름 흥미롭다.











#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이안 보스트리지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에서 제5곡 '보리수'

https://youtu.be/TF5DuLqYgtA


- '겨울 나그네' 중에서 24곡 '거리의 악사'

https://youtu.be/14j7btI_D4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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