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일기'를 읽고
내가 꿀 수 있는 꿈이 자꾸 줄어들고, '인간답게'라는 가치 기준이, 진리가 자꾸 모호해져 간다.
그래서 때로 한 10년쯤 누워 있고만 싶어질 때가 있다. 모든 생각도 보류하고 쉽게 꿈꾸는 죄도 벗어버리고 깊이깊이 한 시대를 잠들었으면.
잠들지 않고 싸울 것을, 이 한 시대의 배후에서 내리는 비의 폭력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독보다 빠르게 독보다 빛나게 싸울 것을, 내가 꿀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의 꿈이라도 남을 때까지.
싸움에의 그 무슨 고독한 의지가 나를 키워주는지, 살려주고 죽여주는지, 그것을 따라 나는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 타려 한다. 내가 잠시 쓸쓸해져서 슬며시 내려버렸던 그 열차를. 인생의 궤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싸워가면서 사는 법, 살아야 하는 법을 철저히 배우기 위해, 공부하듯이......
내 어머니는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으며, 조만간에 그녀가 살았던 한 문장 전체가 차례차례 지워져 나갈 것이다. 그 길고 아, 그러나 너무도 너무도 짧고, 지루하고 지겹고 고달프고 안간힘 써야 했던 한 문장이, 쓰일 때보다 몇억 배 빠른 속도로 지워져 마침내 텅 빈 백지만 남으리라.
나는 실제의 한 죽음을 통해, 죽음은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죽음은 다만 한 문제 자체를 도중에 종결시켜버릴 뿐이며, 더 나아가 그 문제엔 해답이 없을지도 모르며, 더 더 나아가 아마도 그런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어느 날 우리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바로 그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더욱 어여쁘게 살아 오른다.
나는 시를 열심히 쓰지도, 시에 관해 열심히 생각하지도 않는 시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너무너무 게으른 시인이다.
어째서 열심히, 열정을 갖고 쓰지 못할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시에 대해,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믿음도 아무런 희망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이 만약에 내게 무엇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구원도 믿음도 희망도 아니고, 다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완벽하게 놀고먹지만은 않았다는 위안.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의 현실에 아무런 역동적 작용도 할 수가 없는, 힘없는 시시한 위안일 뿐이다.
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은 무엇을 해야 할까. 시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러나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어서 다른 꿈을 슬쩍 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시원성에 젖줄을 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 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