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에서 마주하는 그리움의 자리

-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일기'를 읽고

by 밤과 꿈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1990년에 책세상에서 출간되었었다. 그러니까 시인의 도발적이고도 예민한 감성이 독자들을 매료시켰던 1980년대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시인에게 좋아한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최승자 시인은 강은교 시인과 함께 1980년대에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 여성 시인이다.

두 시인의 1970~1980년대의 시에서는 공히 허무의 정감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억압된 시대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두 시인이 허무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달랐다. 시집 '허무집'에서 표출되는 강은교 시인의 허무가 툭 건드리면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정신의 곡예였다면, 최승자 시인의 시에서 언뜻 느껴지는 허무는 시인 특유의 메마른 시어로 해서 오히려 먼발치에서 허무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일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당시 최승자 시인의 시는 거칠지만 건강한 서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집을 진작에 읽어보지를 못했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시나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난다에서 이 산문집을 증보하여 다시 출간했다. 기존에 수록되었던 1976년부터 1989년에 쓰인 글에 더하여 1995년부터 2013년에 쓰인 글이 수록되었다.

오로지 시인에 대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산문집을 구입,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시인의 글에 대하여 정서적 동질감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시인은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유신 세대인 반면, 나는 19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5공 세대라는 시간적 간극이 있지만 다르지 않은 정서를 가지고 살아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의 거대한 타의(他意), 아마도 경제개발에 의한 물질사회와 유신독재를 뜻하는 불가항력의 힘을 의식하면서

내가 꿀 수 있는 꿈이 자꾸 줄어들고, '인간답게'라는 가치 기준이, 진리가 자꾸 모호해져 간다.
그래서 때로 한 10년쯤 누워 있고만 싶어질 때가 있다. 모든 생각도 보류하고 쉽게 꿈꾸는 죄도 벗어버리고 깊이깊이 한 시대를 잠들었으면.

이라고 말한다. 시인이 마주하는 허무의 접점을 이해한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의 억압과 마찬가지로 청산되지 못한 억압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그러나 시인은 이내 허무의 끝점에서 "허무의 가장 독한 힘으로 일어나"기를 갈망한다.

잠들지 않고 싸울 것을, 이 한 시대의 배후에서 내리는 비의 폭력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독보다 빠르게 독보다 빛나게 싸울 것을, 내가 꿀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의 꿈이라도 남을 때까지.
싸움에의 그 무슨 고독한 의지가 나를 키워주는지, 살려주고 죽여주는지, 그것을 따라 나는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 타려 한다. 내가 잠시 쓸쓸해져서 슬며시 내려버렸던 그 열차를. 인생의 궤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싸워가면서 사는 법, 살아야 하는 법을 철저히 배우기 위해, 공부하듯이......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라고 말하는 시인이 그 나이에 경험하는 정신의 궤적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시인은 20대에 경험하는 허무의 극점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체득하게 되는데 '죽음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를 언급한다.

내 어머니는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으며, 조만간에 그녀가 살았던 한 문장 전체가 차례차례 지워져 나갈 것이다. 그 길고 아, 그러나 너무도 너무도 짧고, 지루하고 지겹고 고달프고 안간힘 써야 했던 한 문장이, 쓰일 때보다 몇억 배 빠른 속도로 지워져 마침내 텅 빈 백지만 남으리라.

이처럼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시인은 놀라울 만큼 냉정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또한 시인이 응시하는 허무의 극점이다.

그러나 시인은 시인이 도달한 허무의 극점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실체를 찾아내고자 한다.

나는 실제의 한 죽음을 통해, 죽음은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죽음은 다만 한 문제 자체를 도중에 종결시켜버릴 뿐이며, 더 나아가 그 문제엔 해답이 없을지도 모르며, 더 더 나아가 아마도 그런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시인은 말한다. 죽음은 "현실적이고, 비참하며, 피할 수만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도망가버리고만 싶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라고.

죽음에 대한 시인의 인식에 모두가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유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시인의 인식이 반드시 허무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음을 다른 글 '비어서 빛나는 자리'에서 발견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어느 날 우리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바로 그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더욱 어여쁘게 살아 오른다.


이 산문집에는 시인의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함께 실려 있다. 그 시절의 초라하지만 빛나는 추억 또한 나의 것과 다르지 않기에 시인의 글에 공감한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더 아름다운 추억에 대하여.


그리고 이 산문집의 제목이기도 한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라는 글에서 시인은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하여, 이 나라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시를 열심히 쓰지도, 시에 관해 열심히 생각하지도 않는 시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너무너무 게으른 시인이다.
어째서 열심히, 열정을 갖고 쓰지 못할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시에 대해,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믿음도 아무런 희망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이 만약에 내게 무엇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구원도 믿음도 희망도 아니고, 다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완벽하게 놀고먹지만은 않았다는 위안.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의 현실에 아무런 역동적 작용도 할 수가 없는, 힘없는 시시한 위안일 뿐이다.

이와 같은 시인의 글에서는 시인의 첫 시집인 '이 시대의 사랑'에서 시인이 말한 "상처 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존재한다"라거나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라는 발언과 궤를 같이 하는 시적 인식을 확인하게 된다.


1980년대 초에 접했던 최승자 시인의 시는 곧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젊음의 초상이었다. 그리고 이 산문집에서는 그 시절의 자화상을 확인한 후 느끼는 그리움이 있다. 반가우면서도 아프다. 그리움이라는 것이 상실한 것에 대한 기억이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 이 산문집이 아픈 그리움의 자리를 펼친다.


이 산문집을 다시 출간하면서 수록된 1995년부터 2013년 사이의 글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아픔과 마주한다.

시인은 2010년에 쓴 '최근의 한 10여 년'이라는 글에서 12년째 정신분열증이 시달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5년 동안 정신과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어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문학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는다.

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은 무엇을 해야 할까. 시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러나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어서 다른 꿈을 슬쩍 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시원성에 젖줄을 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 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시인이 소설을 썼다는 소식이 없으니 아직도 시인은 그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시가 되었던 소설이 되었던 문학을 향한 의지 가운데 시인이 늘 건강을 잃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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