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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Dec 18. 2021

프롤로그: 먼저 생각하기, 그리고 고대의 음악

- 새롭게 읽는 서양음악사(1)


서양음악, 보편적인 음악 언어가 되다


 서양음악이란 무엇인가. 우선 지역적으로는 서양이라 불리는 유럽과 신대륙(주로 미국)의 음악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재즈 드러머 아트 블레키 같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재즈 음악을 일컬어 진정한 미국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유럽 음악과 구별하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백인에 의해 시작된 서양음악에 아프리카 음악 전통이 결합된 재즈, 즉 흑인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담긴 말이라고 하겠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따로 다루게 될 것이다. 

 또한 시대적으로 볼 때 서양음악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양식의 변화를 겪으면서 지속되고 있는 음악 현상이다.

 따라서 서양음악이란 한마디로 고대로부터 서양으로 불리는 지역에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향유되고 있는 음악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제 서양음악은 유럽과 신대륙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음악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이해하고 향유하는 음악이 되었다. 우리는 서양음악을 접하면서 더 이상 이 음악을 서양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음악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서양의 백인들이 판소리 공연을 보면서 가지는 호기심과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우리는 서양음악을  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말하는 서양음악은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인 이해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마다 문화정책의 이름으로 경쟁적으로 교향악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영 방송사인 KBS에서는 클래식 FM을 운영하면서 24시간 방송시간 중 23시간을 서양음악에 할애하고 있다. 국영 방송사에서 우리의 전통음악 방송에는 시간을 편성할 만큼 전통음악보다는 오히려 서양음악이 친숙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서양음악을 배우는 수많은 음악도들이 본고장으로 유학을 떠나고, 각종 콩쿠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뽐내고 있다.

대표적인 국내 교향악단인 서울시향의 연주회 모습

  따라서 서양음악은 서양, 특히 유럽에서 탄생하여 발전해 온 음악이지만 이제는 특정 문화권에 한정 지어 설명할 수 없는, 보편적인 인류 전체의 문화 자산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문화권의 음악에 비해 이와 같은 서양음악의 두드러진 도약은 어떤 원인에서 기인한 것일까. 우선 과학의 발달로 인해 서양의 문명이 인류 문명과 문화를 주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사실은 서양이 음악의 기보법(記譜法)에 있어 탁월하고도 효율적인 방안을 앞서 창안했다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기보법의 발달, 구비전승의 한계를 벗어나다


 음악학자 폴 그리피스는 "다른 문화권의 음악이 본질적으로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서양음악의 본질은 변화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피스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겠다. 본래 모든 음악의 원형은 종교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이때 음악은 일반적으로 의식을 집전하는 소수에 의해 소수에게로 전승되었기에 특별히 체계적인 기보법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원이 발달한 기독교에서는 소수가 아닌 수도자 모두에게 집단 전승의 필요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유럽에서의 기보법 발달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기보법 발달의 배경에는 보다 큰 정치적 이유가 있지만 다음 장에서 별도로 언급하게 될 것이다.

 다만 서양음악사에 있어 기보법의 발달이 음악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론 다른 문화권이나 고대의 서양에서도 간단한 기보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세시대에 이르러 고안된 효율적인 기보법으로 해서 서양음악은 제한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일단 기억의 부담에서 벗어난 서양음악은 른 속도로 전파, 보급이 활성화되었고, 이후에는 단조로운 단선율을 탈피, 화성의 개념을 낳아 다성음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서양음악을 제외한 어떤 문화권의 음악에서도 화성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보법은 단순한 기억을 위한 수단에서 작곡이 가능한 수단으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된다. 

 기보법이라는 기억의 보조 수단을 가지게 되기 이전의 서양음악은 다른 문화권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음악이 그 사용자(아마도 초기에는 무당이나 주술사였을 것이다.)의 기억에 의해 후대로 구비전승(口碑傳承)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음악은 기보법을 가지게 됨으로써 기록으로 음악을 전승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곡이라는 창작 행위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다른 문화권의 음악이 전설의 영역에 머물고 있었다면 서양음악은 소설의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말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유독 서양음악에서만 기보법이 발달하게 된 것일까. 유럽인들이 남달리 음악적 유전자가 우월한 것이 아니라면 서양음악에서 기보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보법 발달의 배경에 대해서는 기보법이 빠르게 보급, 사용된 중세의 음악을 다루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그리스, 로마의 고대 음악을 간단히 언급하면서 이 장을 마치기로 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박명에 갇힌 음악의 편린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의 기원은 주술 혹은 제례 의식과 연관이 있다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라스코 동굴이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서 우리는 구석기인들의 내면 엿볼 수 있다. 동굴 벽화의 들소 그림에서 사냥에 나서는 구석기인들의 자기 최면과 같은 주술 의식을 짐작케 한다.

 그들에게 자연은 공포의 대상이자 기원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체험이 자라는 이 지점에서 예술적 체험이 함께 탄생했다. (5, 6만 년 전 중기 구석기시대에 종교의 기원에 관한 학설은 매장의 증거 등 간단한 것이 아니지만 글의 범주를 벗어나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원시시대로부터 비롯한 종교적 표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

 서양에서 최초의 고대 문명을 꽃피운 그리스는 다신 종교를 가진 사회로서 각종 제례 의식과 디오니소스 축제에 음악이 사용되었으리라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원형극장에서 공연되는 오이디푸스 왕이나 안티고네와 같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노래를 담당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코러스의 역할이 있었고, 이들을 위한 서정시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사회 전반에 걸쳐 음악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스의 에피다브로스 야외 원형극장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건축과 조각 등 인접 예술과 문학과는 달리 고대 그리스 음악은 그 면모를 알 수 있는 악보는 물론, 구비 전승된 음악이 거의 없어 그 시대의 음악을 제대로 알 방법이 없다. 효과적인 기보법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직접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음악을 알 수는 없지만 간접적인 자료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그리스 음악의 편모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음계를 창안했다는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음악의 윤리'와 같이 음악과 관련한 기록들이 있고, 정형화된 선율이 반복되는 노모스(nomos)라는 음악 형태가 있었다는 사실, 이에 아울로스와 리라, 대형 리라인 키타라라는 악기가 사용되었다는 내용 등 충분하지 않은 사료가 전해지고 있다.

 또 한 가지, 음악을 뜻하는 영어인 뮤직(music)이 그리스어 무지케(musik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무지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무사이(mousai) 여신들, 제우스 신과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나온 9 명의 여신들의 행위, 즉 제사 의식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으로 시, 음악, 무용 등의 예술 행위의 총체적인 모습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미학적 기초는 18세기에 빈켈만에 의해 형성되었다. 빈켈만은 고대 그리스 예술의 전성기인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에 대하여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같이 고대 그리스 예술(여기서 예술이라고 함은 미술을 뜻한다.)의 아름다움을 그 단순함에서 발견하고 있다.
 또한 빈켈만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저서에서 단순성의 개념을 도출하고, 이들 저서에 기록된 "에로스(Eros)를 통해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다"라는 언급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미학 이론을 형성했다.

 에로스란 무엇인가. 바로 사랑을 뜻한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말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단어가 있고, 그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먼저 에로스(Eros)는 남녀 간의 사랑처럼 정욕과 열정에 휩싸인 사랑으로 이기적이기도 한 것이다.
 두 번째로 아가페(Agape)가 있다.
 이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같이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기도 한 헌신에 기초한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필리아(Philia). 이는 아가페처럼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가 교통 하는 헌신, 즉 우정과 같은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 낮은 등급의 단계인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통로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에로스가 주는 열정의 시간은 반드시 끝이 있으니, 이때 다음 단계의 사랑으로 전환되어 궁극적으로 필리아의 단계로 나아가야 미(美)는 완성된다는 것이다. 즉 플라톤이 말한 바 "아름다운 육체 속에서 덕으로 이르는 정신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의 형상이 바로 '단순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음악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은 어떤 뜻일까.
 그것은 음악을 시와 같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무시케를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에서는 시를 제의에서 시작된 음악과 춤, 연극적인 요소를 포괄하고 있었고, 이때 시는 때때로 광기를 표출하는 영감의 산물로 보고 있었다. 따라서 시는 필요악으로 이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목관악기인 아울로스를 부는 악사와 하프의 원형인 리라가 그려진 도자기의 파편

 그리고 로마시대에 들어서서도 단편적인 음악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서양음악사의 한 장을 쓰기에는 알려진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서양음악사는 부득이하게 중세의 음악으로부터 시작된다.





 

 

감상의 예 1-1)

세이킬로스의 노래: 기원전 200년 경 고대 그리스의 비문에 기록된 노래로 세이킬로스라는 남자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되어 '세이킬로스의 노래'라고 부른다. 따라서 세이킬로스가 작곡한 노래로 짐작되지만 확증할 근거는 없다.

 이 노래는 문자와 기호로 음의 높낮이와 길이를 표시한 초보적인 악보가 비문에 남아있어 현재에서도 재현이 가능하다. 온전한 형태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악보라고 할 수 있으며, 반주를 담당하는 리라도 전해지는 그림을 참고로 복원한 것이다.

 옛 음악의 완벽한 재현이라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복잡하지 않은 음악이라 거의 근사치에 도달한 재현으로 볼 수 있다.  

https://youtu.be/9RjBePQV4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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