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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Jan 18. 2022

또 하나의 음악, 중세의 단선율 세속 노래

- 새롭게 읽는 서양 음악사(4)


사람이 사는 곳에는 음악이 있다


 중세시대가 아무리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지만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속에 경건이라는 감정만 존재했을 리는 만무하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많은 감정이 있는 만큼 그 표현이 가능했겠지만, 그것이 모두 예술의 형태로 나타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이유로 금기로 여겨지던 감정도 있었을 것이고, 사회적 계층에 따라 향유할 수 있는 감정의 폭도 달랐을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세 시대에도 교회 음악이 아닌 세속적인 음악이 다수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사료로 해서 이 시대의 세속 음악을 온전히 알아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당시의 시대상으로부터 사료 부족의 원인을 유추할 수가 있다. 우선 중세 시대는 모든 지적 자산이 수도원에 의해 축적되고 독점되었던 시대였다. 따라서 음악에 대한 사료 또한 교회 음악에 편중될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에서는 전례와 교회에 관련한 서식의 작성, 그리고 종교 서적의 필사 등 과도한 업무가 많아 세속의 음악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문맹률이 높았지만 문자를 쓰고 읽을 줄 알았던 귀족에 의해 부족하나마 사료를 남겨 중세 시대 세속 음악의 윤곽이나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일상의 생활 정서를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일반 평민이나 농노 계층 또한 음악에 가까이 있었겠지만 그 실태를 전혀 알 방법이 없다. 그렇게 중세 세속 음악의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그때에도 지금처럼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음악이 있었을 것이다.


단선율 세속 노래, 중세의 판타지를 노래하다


 현재 알려진 중세의 단선율 세속 노래가 궁정과 귀족 계층에 의한 것이었기에 고귀하고 우아한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그 내용으로 가장 많은 것이 귀부인과 기사의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귀부인이란 영주의 아내로서 영주의 충복인 기사로서는 넘볼 수 없는 사랑의 상대였다. 따라서 이들 사랑 노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를 유명한 중세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적 좌절'(요한 하위징아 , 중세의 가을)을 노래하는 궁정의 연애(Minne)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들은 "성적 실현을 결코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체를 이상화"하는 것이다.(요한 하위징아 著, 앞의 책)

 지금의 관점으로서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지만 중세인들은 '궁정 연예'를 통해 일종의 판타지를 창조했다. 그리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과 함께 궁정 연예를 통해 고단한 현실을 잊고자 했을 것이다.

궁정 연예담을 노래한 민네장을 수록한 코덱스


중세, 음유시인들의 시대


 중세의 세속 노래는 11세기 말에 프랑스 남부의 트루바두르(Troubadours)로부터 시작되며, 한 세기가 지난 뒤 이에 영향을 받은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 트루베르(Trouveres), 그리고 독일 지역에서 민네징거(Minnesanger)에 의해 노래되었다.


 먼저 프랑스 남부의 귀족이나 기사 계급의 음유시인인 트루바두르에 의한 세속 노래 칸소(Canso)가 있다. 칸소는 무반주로 노래되던 그레고리오 성가와는 달리 아랍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악기의 반주가 따랐으며, 궁정에서 노래되던 궁정 시가로 유려하고 단순한 선율로 해서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다.

 역사적 사료에 의하면 최초의 트루바두르로 알려진 아키텐의 기욤 9세(1071~1126)와 그의 딸 엘레노레(프랑스 북부로 트루바두르의 노래를 전파했다), 그리고 트루바두르의 전성기에 활동한, 가장 유명한 트루바두르인 베르나르 드 벤타도른과 13세기 트루바두르의 쇠퇴기에 활동, 마지막 트루바두르로 알려진 기로 리키에 등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감상의 예 4-1)


왕 앞에서 노래하는 프랑스 남부의 음유시인, 트루바두르

 

 그리고 트루바두르의 칸소에 영향을 받아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 나타난 세속 노래가 트루베르의 샹송(Chanson)이다. 샹송 또한 칸소와 마찬가지로 악기의 반주에 의해 노래되었으며, 칸소에 비해 많은 4,000 수의 시와 2,000 곡의 노래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트루베르의 노래는 트루바두르와 마찬가지로 13세기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점차 쇠퇴하게 된다.(감상의 예 4-2)  

 대표적인 트루베르로는 크레티앙 데 트루아, 상파뉴의 티보 4세, 고티에 드 코앙시, 장 브르텔,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인 사자왕 리처드가 있었다. 특히 사자왕 리처드 등에 의한 십자군 원정과 관련한 노래를 '샹송 드 크루아자드(Chanson de Croisade)'라고 한다. 


 민네징거에 의한 노래 민네장(Minnesang, 사랑의 노래)은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로서 12세기 중엽에 트루베르의 영향으로 나타났다. 민네장 또한 칸소나 샹송과 마찬가지로 궁정의 영주나 기사에 의해 창작되었다.(감상의 예 4-3)

 대표적인 민네징거로는 민네장의 전성기인 1200~1230년에 걸쳐 활동한 나이드하르트 폰 로이엔탈과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가 있고, 귀족 계층에서 시민 계층으로 세속 노래의 향유가 전환되는 시기(1230~1300)에 활동한 탄호이저(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주인공), 14세기 말에서 15세기에 걸친 쇠퇴기에 활동한 오스발트 폰 볼켄슈타인(최후의 민네징거)가 있다.

 이처럼 민네징거는 트루바두르나 트루베르와는 달리 보다 오래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 15세기 말에서부터 16세기에 걸쳐 시민 계층이 운영하는 형태의 작시, 작곡 길드 결성하여 활동한 마이스터징거(Meistersanger)로 대체되었다가 17세기에 들어 이마저도 해체되었다.


# 가사에 따른 노래의 분류

 트루바두르, 트루베르와 민네징거의 노래 공히 가사 내용의 틀에 따라 노래를 분류할 수 있다.
- Chanson, Amour Courtois: 사랑의 노래
- Alba, Aube: 새벽 이별의 노래
- Pastorela: 신분을 극복하는 사랑
                       (주로 기사와 시골 소녀의 사랑)
- Chanson de Croisade: 십자군의 노래
- Sirventes: 윤리적, 정치 사회적 노래
- Lamentation, Planes: 애도의 노래

 

 이외에도 13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했던 칸티가

(Cantiga)라는 노래 양식이 있었다. 특히 칸티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적인 노래 가사로 정착, 칸티가 데 산타 마리아라는 독특한 노래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감상의 예 4-4)

 또한 포르투갈 지역에서도 이의 영향을 받아 고상한 사랑의 노래인 칸티가 데 아모르 칸티가 데 아미고라는 노래 양식도 있었다.

 이들 노래는 지역적으로 아랍과 가까운 탓에 아랍 음악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단선율 세속 노래의 중심을 이루는 이들 노래는 궁정에서 노래되던 궁정 시가라면 궁정이 아닌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노래된 세속 시가가 있었다. 그러나 사료가 충분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음악 용어가 후대의 음악과 혼용되고 있어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 장에서는 언급을 피하도록 한다.

파티를 즐기는 중세인들. 이 때 세속 시가가 연주되었다


 중세 시대 음악의 중심은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교회 음악이 되겠지만 이들 세속 노래가 지닌 인간적이고도 순수한 연가가 가진 매력은 오히려 성가의 숭고함을 능가한다. 비록 환상 세계에서나 가능할 사랑일지라도 그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에 중세 시대를 다시 본다. 비록 그 꿈이 일반 대중이 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중세 시대의 단선율 음악은 13세기의 전성기를 기점으로 이제 '아르스 노바'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다. 14세기에 시작되는 이 새로운 시대에는 단선율 음악을 다성음악으로 대체하는 시기이지만 아직 단선율 세속 노래가 계속 노래되던 시대였다. 이 과도기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주요 인물이면서 단선율 세속 노래 또한 작곡했던 서양 음악사상 최초의 거장 음악가인 '기욤 드 마쇼'라는 작곡가를 만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감상의 예 4-1)트루바두르의 칸소

https://youtu.be/Xk1W22yHLJQ


감상의 예 4-2)트루베르의 샹송

https://youtu.be/jQQRe3NK_C8


감상의 예 4-3)민네징거의 민네장

https://youtu.be/DyzpYmszYZ4


감상의 예 4-4) 칸티가 데 산타 마리아의 연주.

악기의 편성이 많으며 기악으로만 연주되기도 한다.

https://youtu.be/LT9Apqd-7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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