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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것이 경건하다

- 익명(匿名)의 너에게 부치는 편지(14)

by 밤과 꿈

설 연휴의 마지막 날에 부모님, 그리고 장인, 장모님의 산소에 다녀왔다네.

이틀 전 많은 눈이 내려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의 접근이 걱정되었지만 볕이 잘 들어 미끄럽지 않게 성묘를 드릴 수 있었다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전부라서 성묘라는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문막과 용인에 있는 공원묘지를 들려야 했기에 이른 시간에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했지.

마침 문막으로 가는지 모를 장의 차량과 꽤나 긴 시간을 동행했었어.

어릴 때 보는 장의 차량은 두렵고 기분 나쁜 대상이라는 기억이 있었지.

그래서 장의 차량을 보게 되면 서둘러 가슴에 단 명찰을 가리곤 했었어.

돌이켜 생각하니 살아온 날들이 더께가 되어 쌓일수록 죽음은 우리에게 친구처럼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너도 알다시피 나는 가깝게로는 부모님과 형님 한 분을 내 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고, 작년에는 장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았다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서로를 떠나갈 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이 결코 서로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다네.

내 생각이 그렇기에 장의 차량과 함께 배웅하듯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며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었어.

"오늘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정한 목숨 하나 우리의 곁을 떠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교회의 권사님 한 분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전달되었다네.

독신으로 지내온 또래의 여 권사님 한 분이 오래 암 투병 중이었는데...

진통제에 의지한 채 생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는 중이라고...

모든 사람의 일생이 다양한 모습을 지녔겠지만, 그 생이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한 사람의 일생은 장엄한 풍경이고 그 삶은 경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네.

죽음도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살아온 풍경의 완성으로서 경건에 속해 있을 것이겠지.

오늘도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지만, 흐르는 시간 안에 우리 각자의 때가 있고...

내가 크리스천으로서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때라고 믿어.

지금 권사님도 그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의 시간이 곧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평안하리라 생각해. 우리의 모든 것이 경건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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