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 그리고 삶

모드 루이스의 '모드의 계절'을 읽고

by 밤과 꿈

모드 루이스(Moud Lewis, 1903~1970)는 캐나다의 국민 화가로 칭송받고 있는 캐나다의 민속 화가이다.

어려서부터 중증의 소아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아 14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수채 물감으로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기 시작했다.

1935년에 아버지가 사망, 그리고 1937년에는 어머니마저 사망하고 이듬해 노바스코샤 딕비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훗날 남편이 되는 에버릿 루이스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다 에버릿 루이스에게 청혼, 30여 년을 생활하면서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던 가로 3미터, 세로 3.7미터 크기의 작은 오두막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모드 루이스는 딕비의 마셜타운에 있는 이 오두막에서 특유의 작은 그림들을 그려 팔고, 남편 에버릿은 낮에는 생선을 팔면서 밤에는 농장 경비원 일을 했다.

오두막 앞의 모드와 에버릿 루이스


'모드의 계절'은 사실 모드 루이스 혼자의 책은 아니다. 모드 루이스의 그림과 함께 밥 브룩스의 사진, 그리고 랜스 울러버의 글이 같이 해서 완성된 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우리의 눈길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것은 물론 컬러로 수록된 모드 루이스의 사랑스러운 그림이지만, 당연히 루이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진과 글은 제삼자의 시각에 맞추어져 있다. 그 말은 이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객관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완전히 무명으로 처녀 시절에는 5센트짜리 크리스마스 카드를, 결혼 후에도 2~4달러의 저렴한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다 1964년 캐나다의 공영 방송사인 CBC의 인기 프로그램인 텔레스코프에 이 작은 체구의 무명 화가가 소개되어 비로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일 년 뒤 토론토에 소재한 스타 위클리에서 모드 루이스의 기사가 '예쁜 그림을 그리는 작은 할머니'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이후 그녀는 캐나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캐나다를 대표하는 민속 화가가 되었다.

따라서 모드 루이스가 그 정도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존재라면 그녀의 일상을 다루는 책을 기획할 때 객관성은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다.

랜스 울러버와 밥 브룩스가 글과 사진으로 소개하는 모드 루이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에버릿 루이스의 삶은 그녀의 소박하면서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대로 닮았다.

유성 페인트를 재료로 해서 그린 모드 루이스의 그림은 고양이, 말과 소와 같은 친숙한 동물, 그리고 다채로운 꽃과 함께 이 부부가 살고 있는 노바스코샤 딕비의 아름다운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 특히 인기가 많았다

모드 루이스는 어머니로부터 두어 차례 그림을 지도받았을 뿐 정규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따라서 모드 루이스의 그림에는 스타 위클리가 그녀의 그림을 '원시적인 그림'이라고 소개했듯이 우리 식으로 말할 때의 고졸미(古拙美)와 일종의 미적 건강함이 있다. 이는 때때로 정형화된 기성 미술의 시각으로 볼 때 독창성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모드 루이스의 소박한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모드 루이스는 자신의 소재를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면 구도의 정형화된 비례를 벗어난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그녀가 특히 좋아했던 꽃은 계절에 상관없이 자주 그려진 소재였다.

모드의 그림에는 언제나 꽃이 있었어요. 당연히 모드는 정원과 꽃을 아주 좋아했고요. 눈이 내린 풍경에도 꽃을 그려 넣어서, 여기저기에 튤립이 피어 있었어요. 내 생각에 모드는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그림 그릴 수 있는 페인트와 보드만 있으면,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했죠.
- 플로스 루이스의 인터뷰

모드 루이스의 그림이 가진 소박함과 사랑스러움은 이 부부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항상 가난했지만, 그리고 선천적인 기형을 가진 불편한 몸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항상 밝은 미소와 수줍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 모드 루이스였다.

모드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행복해 보였고, 때때로 흥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손가락은 울퉁불퉁했고, 손가락이 붙어 있어 손이 마치 감자처럼 보였다...... 모드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손님이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듯 보였다.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고개를 들어 웃어 보라고 했더니, 밝은 눈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들었다.
- 밥 브룩스, '모드와 함께 보낸 하루'중에서


루이스 부부가 살았던 작은 오두막은 워낙 작아서 사실 단칸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모드 루이스는 접이식 TV 테이블을 사용, 그림을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허술한 계단을 이용, 지붕 아래의 다락같은 좁은 공간에서 잠을 잤다. 그러면서도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 같다.

1966년 여름, 우리 가족은 마셜타운 1번 국도 가까이에 있던 모드의 작은 집에 처음 방문했습니다. 에버릿은 우리에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페인트와 캔버스에 둘러싸인 채 창가에 앉아 있던 모드는 텔레비전용 접이식 테이블을 작업대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나와 부모님은 그림을 여러 점 사려고 했지만, 모그는 한 사람이 한 점씩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캐럴 힐 부인의 편지

그림 한 점에 2~4 달러를 받으면서 모드는 말년에 심해진 관절염 때문에 한두 시간 쉬어가면서 작업을 했다. 그토록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그녀의 심성과 그림은 쾌활함과 소박함을 잃지 않았다.

"모드의 그림은 겨울의 추위를 떨치고 봄날 만개하는 자연의 투지와 끈기에 대한 찬사다"라고 랜스 울러버는 쓰고 있다.

고향의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


이처럼 모드 루이스의 그림은 1964~5년에 비로소 인정받았지만 경제적인 욕심 없이 살다 모드 루이스는 1960년에 폐렴으로 사망했고, 9년 뒤에는 남편 에버릿도 세상을 떠났다.

모드의 그림이 생전에 인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엄청난 명성은 그녀의 사후 3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뒤였다. 모드 루이스가 사후에 누리는 명성은 그녀가 생전에 살았던 모습과는 극명하게 다른 것이었다. 루이스 부부의 오두막도 있던 자리를 떠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모드 루이스가 태어났던 야머스와 에버릿과 함께 살았던 딕비 어디에도 모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에서 우리는 모드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의 노바스코샤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드의 그림과 함께 그녀의 삶은 'Maudie'라는 영화로 제작(국내에서는 '내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최근 재출간된 책의 겉표지
모드 루이스의 일생을 그린 영화 마우디(내 사랑)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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