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살을 맨발로' 써 내려간 우리 문학의 현장

- 김훈, 박래부의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를 읽고

by 밤과 꿈


신문지상에서 만났던 유려한 문장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처음 만났던 것은 아마도 1980년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일보 (토요판이었던 것 같다)의 지면을 컬러판으로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물론 이후에 소설가로 문명을 떨치게 될 김훈이나 깔끔한 문학 기사로 정평이 나 있었던 박래부 모두 한국일보사 소속의 신문 기자의 신분이었다. 당시에 한국일보를 구독했던 것은 아니라서 연재된 글 모두를 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 그 신문을 구독했던 단골 식당에서 '문학기행'이라는 이 기획 기사를 처음 접하고 가급적 이 연재 기사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유려한 문장에 눈길이 갔다. 김훈과 박래부 기자 두 사람이 격주로 번갈아 써서 올린 기사 모두가 흠잡을 곳이 없는 문장이었다. 한창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라 문장에 주의를 두었던 것 같다. 이에 두 기자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던 것이리라.

그러다 2004년에 한 출판사에서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라는 제목으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선뜻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을 구입했던 것도 '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이라는 부제에서 어렵지 않게 20여 년 전에 꽂혔던 문장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 내용이 좋아 몇 번을 다시 읽기도 했었고, 간혹 참고로 책장을 펼칠 일이 있었다. 최근에도 이 책을 다시 펼쳐 보다 이 책이 절판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소개할 생각을 한다.


고된 산고를 겪으면서 탄생한 문학 지도


이 책은 1, 2권을 합쳐 50명의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작가를 선정, 대표작을 소개하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직접 취재하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처음부터 책의 출간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일간 신문의 기획 취재 기사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방대한 분량이었고, 그만큼 야심 찬 기획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야심 찬 기획에는 김훈과 박래부라는 기자 외에도 장명수라는 뛰어난 기자의 존재감이 컸다. 장명수 기자는 '장명수 칼럼'으로 유명했고, 여성으로서는 쉽지 않았을 한국일보사 사장까지 지냈던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문학기행이 한국일보 지면을 장식할 당시 장명수 기자는 문화부장으로서 문학기행을 기획하고, 김훈과 박래부라는 두 기자들을 지휘하여 이 방대한 기획을 실현했다.

김훈은 책 머리글에서 당시의 분위기와 장명수라는 선배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언급한다.

1980년대 중반, 장명수 기자와 김훈 기자와 박래부 기자는 신문지면에 '문학기행'을 만들어 가면서 그 세월을 견디어 냈다. 그것만이 치욕과 슬픔을 밥처럼 장복했던 그 참혹한 시절을 통과해가는, 우리들 직업의 선후배들의 성실성이며 꿈의 실천이었다. 그 이외의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거나, 보여도 갈 수 없었다..... 장명수 선배의 기획과 지도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속 썩이고 말 안 듣고 제 잘난 척하는 못된 후배들을 감싸고 달래고 져주고받아주는 그분의 마음의 깊이가 아니었다면 '문학기행'은 성립될 수도, 지속될 수도 없었다.

한국일보의 '문학기행'은 1986년 봄 문화부 데스크였던 장명수 문화부장의 남도 여행에서 비롯된 기획이었고, "명작의 무대를 찾아가 보자, 독자들이 명작의 고향을 찾아 국토를 순례하는 나그네가 될 수 있도록 문학지도를 만들자라고 생각했다"라는 장명수 부장의 기획 의도가 3년 여의 연재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이 결코 간단치가 않았던 모양이다. 박래부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1986년 봄, 장 부장에게 등을 떠밀려 박경리의 '토지'에 대해 쓰기 위해 원주에서 박경리 선생을 만나고 다시 경남 하동군 평사리로 떠났다. 작품과 현장을 소재로 기행문을 써야 하는 부담에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했다"라면서, 사흘 동안 현장을 답사하고 낮과 밤을 새워 30여 장의 첫 회 원고를 데스크에 넘겼다고 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2회 원고를 담당한 김훈 기자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택해 전남 순천에서 원고를 완성한 후 박래부 기자에게 "이거 순 골 빠게지는 일이다. 나는 이걸로 끝이다. 너도 부장한테 못하겠다고 말해라"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이후 한동안 부장에게 대들어 기사 쓰기를 거부했었다고 한다. 그 외 박래부 기자가 머리글에서 밝힌 여러 어려움 속에서 3년여 만에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록적 가치에 더하는 유려하고 정갈한 문장


"이 책이 무엇보다도 기록적 가치로서 문학사에 기여했으면 한다"라는 박래부 기자의 바람이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책에서 만나는 두 기자의 열정과 의욕이 깃든, 유려한 문장에 먼저 시선이 머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박래부 기자는 자신의 글을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정치했던 김형의 젊은 날 글쓰기를 들여다보게 한다"라고 당시 이미 미문의 문장가로 이름이 알려졌던 김훈 기자, 즉 훗날의 소설가 김훈의 글에 대하여 언급한다.

따라서 두 기자의 글을 예시로 들어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을 올바르게 알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한다.

"햇살의 방향에 따라서 쪽빛이 되기도 하고 은빛이 되기도 하는 그 요사스러운 잔 물결들은 물 속 깊숙이 들어와 잠긴 연안의 산자락들을 구석구석 쓰다듬고 간지럼 태우고 있었다."
- 김훈(한승원의 '그 바다 끓며 넘치며': 여인의 교태처럼 요사스러운 잔 물결의 바다)

"객주는 우리에게 유랑의 슬픔과 고단함을 가르쳐 주는 '길의 서정소설'... '객주'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김동리의 '역마'가 보여준 길의 서러운 서정이 있고, 전후의 미국 작가 잭 케루악이 '노상에서'를 통해 보여주었던 길의 자유로움이 숨 쉬고 있다."
- 박래부(김주영의 '객주': 길의 문학을 피워낸 그 길에 객주는 없고...)

"무진은 사람들의 일상성의 배후, 안개에 휩싸인 채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상상의 공간이며, 일상에 빠져듦으로써 상처를 잊으려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강요하는 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괴로운 도시이다."
- 김훈(김승옥의 '무진기행': 시간도 삶도 안개 되어 떠돌던 음험한 공간)

"보리밥과 삶은 감자, 시든 고추와 검은 된장에서는 남루하지만 아직 불행의 냄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은 바로 그들이 앉아 있는 조각 마루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느닷없는 불행 앞에서 무력하게 노출돼 있는 벌거벗은 그들의 삶, 바로 그 앞에서."
- 박래부(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시각이 정지된 양, 아직 그대로인 '난장이들'의 삶)


사실 이 책에서 느끼는 감흥이 신문지상에서 따끈따끈한 활자로 만나던 감흥을 따르지는 못한다. 일주일을 기다려 일간 신문의 문화면을 펼칠 때 신문지 특유의 냄새와 함께 새로운 글을 만나는 반가움을 단행본 책이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장명수 부장의 말처럼 우리 문학의 생생한 맨살을 열정 가득한 두 기자의 맨발로 찾아 작성한 문학 지도를 만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는 있으리라. 이에 더하여 유려하고 정갈한 문장을 대하는 기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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