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보법, 서양음악 발전의 원동력

서양 음악사를 이끈 10가지 장면(1)

by 밤과 꿈

그레고리오 성가의 성립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서양음악은 중세의 교회에서 전례에 사용되던 성가(Chant)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성가를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부릅니다.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성가, 로마의 로마 성가, 스페인 지역의 모짜라베 성가 등 서방교회의 다양한 성가의 통일을 지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방교회, 즉 교황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로마교회의 전례음악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는 로마의 서방교회와 비잔틴의 동방교회 사이의 알력이 극심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1054년 동서교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비잔틴의 동방정교회로 완전히 갈라서기 전으로 교황으로서는 교회 권력의 중앙 집중을 강화해야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한 성가 통합은 표면적으로는 각 지역의 성가들이 멜리스마(성악곡에서 한 음절에 첨가되는 장식적인 음표)의 남발 등으로 해서 성가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교회 권력의 강화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통일된 성가를 교황의 이름을 따라서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합니다.


전례 의식의 양식화와 집례의 독점은 교권의 중심


얼핏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가톨릭 교회의 전례인 미사가 교인들에게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을 고도로 양식화할 필요가 있었고, 집례를 성직자가 독점함으로써 교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신교회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예배에서 가톨릭 전례의 성찬을 간소화하고 이를 대신한 말씀과 봉헌 찬양 중 말씀과 축도는 목회자의 몫입니다. 이것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제나 목사가 대제사장으로서 집례 할 때 마땅히 감당해야 할 부분입니다만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때 기독교의 전례에는 교권의 유지와 밀접하게 연관된 점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와 같은 면에 부정적인 퀘이커교도들은 교회와 성직을 부정하고 양식화된 예배를 명상과 기도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서양음악에 남긴 선물, 기보법


그레고리오 성가가 서양음악에 남긴 가장 큰 기여는 기보법의 발달을 촉진시켰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그레고리오 성가 성립의 배경에 대한 언급도 궁극적으로는 기보법의 발달에 대하여 말하고자 함입니다.

기보법이란 말 그대로 음악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그레고리오 성가의 양적 증가에 따라 기보법이 필요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전례를 집전하는 소수의 구별되는 집단인 성직자, 수사 등의 기억으로 성가가 전수되어 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기억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성사의 수가 늘어난 결과가 기보법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보법의 사용으로 성가의 사용에 연속성과 정확성을 가져왔고, 더하여 기존의 곡에 보다 안정적인 변화, 즉 응용도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1,000년 경 처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보법은 수도사였던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가 지금의 악보와 거의 유사한 선보를 발명하고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의 계명창을 발명하여 기보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도의 손'으로 알려진 악보의 학습법을 개발, 기보법의 보급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서양에서의 이러한 기보법의 발달은 2강에서 다룰 다성 음악의 탄생을 용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건반 악기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기보법의 발달은 다성 음악의 발달과 함께 서양음악을 타 문화권의 음악과 구별되고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다음 2강에서는 서양음악이 타 문화권의 음악과 차별성을 가지는 결정적인 것, 다성 음악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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