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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Feb 11. 2022

다성음악, 고딕의 광휘(光輝)와 함께

- 새롭게 읽는 서양 음악사(5)


고딕의 광휘는 신의 영광을 위하여


 음악은 19세기의 낭만주의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서양 예술사의 중심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낭만주의 이전까지는 언제나 미술이 예술사조를 선도했으며, 특히 중세시대는 건축 양식이 시대 양식으로서 예술의 흐름을 이끌고 있었다. 중세시대가 인간보다는 신을 바라보았던 시대였던 만큼 당연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12세기 중엽에 이르러 중세 사회는 그동안의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을 대체한 고딕 시대(The Gothic Era)의 여명기를 맞이한다. 고딕 건축 양식은 웅장하고도 날렵한 첨탑과 내부 기둥을 천장으로 연장하여 아치를 이루는 등 높은 천장과 수직선이 강조된 건축 구조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크고 많은 창으로 외부의 빛을 최대한 내부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쾰른 대성당의 내부

 12세기 중엽에 시작되어 13세기에 전성기를 형성했던 고딕 양식의 등장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상과 밀접한(아마도 이 시대에서는 신을 경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으리라, 표면적으로는) 연관을 가진 것이 건축이라고 할 때 로마네스크로부터 고딕을 향한 양식상의 변화는 시대상의 변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우리는 12세기에 유럽을 뒤흔든 사건으로 십자군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무모한 십자군의 원정이 가져온 결과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다. 첫째는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남으로 해서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고 영주를 중심으로 하는 봉건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폐쇄적인 유럽 사회가 보다 발전한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십자군 전쟁의 패배가 오히려 유럽 사회를 보다 개방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모습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상의 반영이 고딕 양식의 등장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를 바라볼 때에 지나친 단순화가 가져오는 모호함을 인정해야 한다. 십자군 원정은 12세기에만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13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8차례에 걸쳐 감행되었던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를 고딕 양식의 등장과 결부시킨다는 점에는 분명 모호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 후대의 사람들이 단정적으로 기술하는 것과 달리 시대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그 원인을 축적하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십자군 원정이 낳은 시대상의 변화와 고딕 시대의 태동이 연관이 있다는 의견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저명한 미술사가인 E. H. 곰브리치는 유명한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악의 세력에 대한 피난처인 '전투적인 교회'라는 인상을 주었던 반면, 고딕 양식의 교회는 마치 '하늘의 영광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현관과 창문의 배열은 매우 명료하고도 힘이 안 들어 보이며, 회랑의 격자 장식도 아주 날씬하고 우아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돌더미의 무게를 잊게 되며, 마치 건물 전체가 신기루처럼 우리 눈앞에서 떠오르는 것 같다"라고 고딕 양식 건축을 묘사한다. 한마디로 고딕 양식은 새로운 건축 기술이 만들어낸 역동성과 빛을 실내로 끌어들인 서정성으로 전 시대의 봉건성과 폐쇄성에서 벗어나 신의 거룩과 광휘를 구현, 그 영광을 적극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감성


 앞서 십자군 원정의 결과 봉건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봉건제가 흔들린다는 것은 시민 계급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원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 중심의 경제가 아닌, 도시의 발달과 상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 활동이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딕 시대는 미미하나마 뒤이어 역사의 무대를 장식할 르네상스를 예비하고 있거나 르네상스의 전조를 나타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인들은 고딕 문화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고딕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2~3세기에 북유럽으로부터 남하한 게르만계 야만족인 고트족에서 유래한 것만 보더라도 르네상스인들이 중세 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딕 시대는 분명 이전의 시대와는 다른 전환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헝가리 태생의 문화사가 아르놀트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고딕 시대의 철학적 기저가 '유명론'에 있다고 보면서 "실재론이 정체적, 보수적인 세계관의 표현"이라면 "유명론은 동적, 진보적, 자유주의적인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같이 고딕 시대가 가진 역동성과 다양성이 낳은 고딕 문화는 르네상스인들의 시각과는 달리 끊임없이 생성되는 감성의 표출이었다. 그리고 고딕의 새로운 감성은 조형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다성음악(Polypony)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성음악의 탄생


  단선율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10세기에 이미 수도원을 중심으로 오르가눔(Organum)이라는 원시적인 다성음악이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기본 선율에 장식적인 부속 선율을 첨가한 형태의 것으로 이런 시도는 교황이 있는 로마 교회의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수도원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생 마르샬 수도원에서 부속 선율에 불과했던 오르가눔 성부를 기본 선율과 동등한 것으로 독립된 2성부 폴리포니 성가를 창안, 전례에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성음악의 발달과 보급에 크게 영향을 끼친 곳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으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노트르담 악파를 형성,

레오넹(Leonin, 라틴명 레오니우스)과 페로탱(Perotin, 라틴명 페로티우스) 등의 작곡가에 의해 이곳에서 창안된 다성음악은 14세기에 아르스 노바(Ars nova, 신예술)라고 불리는, 새로운 다성음악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르스 안티콰(Ars antiqua, 구예술)의 기초가 된다.(감상의 예 5-1)

 다성음악, 혹은 폴리포니는 둘 이상의 독립된 선율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음악을 말한다. 이에 비해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하나의 선율로 이루어진 음악을 단선율(Monody) 음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호모포니(Homopony)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둘 이상의 선율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폴리포니와 같지만 폴리포니 음악이 각 성부가 주선율을 나누어 맡는데 비해 호모포니는 하나의 지정된 주선율이 음악을 주도하고 나머지 성부가 이에 일정한 규칙을 따라 화음을 이루는 형태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음악 형태가 호모포니 음악이다. 여러 개의 선율, 성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호모포니는 폴리포니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성음악의 초기에는 폴리포니가 호모포니로 대체되었다가 바로크 시대에 폴리포니 음악은 푸가, 혹은 대위법이라는 이론으로 음악사에 다시 등장한다.


다성음악의 주요 발상지 노트르담 성당의 외관


 이와 같은 다성음악은 다른 문화권의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양음악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서양음악이 다성음악을 창안하게 되는 가장 큰 공적은 효율적인 기보법을 발전시켰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더하여 한 가지 이유를 찾는다면 역설적으로 음악이 전례의 목적이 아니라 보조적 수단에 머물렀기 때문에 다성음악이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에서의 음악의 역할에 대하여 비교해 보면 이해가 빨리 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 미사의 중심은 성체 식이다.  미사의 성체는 실질적으로 예수의 살과 피를 의미한다. 반면 개신교회의 예배에서는 가톨릭 미사의 성체 의식을 말씀과 찬양으로 대체한다. 물론 개신교회에서도 특정한 날을 정해 성만찬을 행하지만 이때 성만찬에서 배찬받는 빵과 포도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만이 제사장의 직분을 맡게 되지만 개신교회의 예배에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와 함께 성가대원 모두가 제사장의 직분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가정 예배를 할 때 평신도 모두가 제사장의 직분을 맡게 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교리가 터가 제창한 '만인제사장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회의 예배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은 그 자체가 예배의 목적이지만 가톨릭 교회 미사에서 성가대의 역할은 미사를 장식하는 보조적 기능에 머문다고 하겠다.

 마찬가지로 다른 문화권의 종교에 있어 음악은 그 자체로 접신을 위한 목적이기에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탈피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 교회에서의 음악뿐만 아니라 건축과 조형물 또한 전례를 위한 보조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듯 높이 솟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 안으로 회절 되어 비추는 빛, 그리고 높은 천장을 감싸고도는 폴리포니 성가의 신비로운 화음을 듣노라면 마치 천국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노트르담 성당의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


중세 다성음악의 변화


 # 고딕 시대 다성음악의 시대 구분

1. 노트르담의 시기(c.1160~c.1250)
2. 구예술(Ars antiqua, c.1250~c.1320)
3. 신예술(Ars nova, c.1320~c.1400)

 이 글이 서양음악사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으면서 정작 음악에 관한 것보다는 양식사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조형 예술이 되었던 음악이 되었던 그것이 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예술의 시대 양식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모습을 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시기의 예술이 과도기의 양식을 취하고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그 시기의 예술에 대하여 소홀히 대하게 된다. 이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를 앞서 음악사를 장식하는, 중세 음악의 전성기인 고딕 시대의 음악을 기술하면서 이처럼 간편한 방법을 선택하고자 한다.

 먼저 위 박스 안의 시대 구분이 다분히 편의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

 아르스 노바는 1320년 경에 음악가 필립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가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써 새로운 음악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지칭하는 아르스 노바 이전의 다성음악을 일컬어 아르스 안티콰라고 구별해서 불렀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트르담 악파의 음악과 아르스 안티콰의 음악에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하나는 서양음악사의 초기에 등장하는 많은 음악 장르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필요가 아니라면 각 장르에 대한 세세한 언급이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가 있다. 따라서 여러 시대에 걸쳐 작곡된 장르라면 그 장르가 주도적인 장르로 자리하는 시대에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기 이전에 아르스 노바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한다.

 아르스 노바는 노트르담 악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파리에서만 성행했던 음악 양식이었다. 

 그 특징으로는 이전에 유행했던 오르가눔과 콘둑투스가 쇠퇴하고, 모테트(Motet)가 주요 장르로 등장한다. 모테트가 많이 작곡되고 불렀다는 것에서 세속 음악이 성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발라드, , 비를레와 같은 칸틸레나 음악이 유행, 세속 가창이 꽃피우는 시기였다.

# 모테트: 모테트는 13~14세기의 중세에서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작곡된 음악 장르로서 중세 말 다성음악의 세속 음악과 15세기 이후의 교회음악이 특히 중요하다.

# 발라드, 롱도, 비를레: 춤에서 기인한 세속 노래로서 성가의 부분인 세쿠엔티아에서 유래했다. 모두 후렴구가 있는 노래로서 후렴구의 위치에 따라 그 명칭이 갈린다.


 아르스 노바에 활동한 음악가로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으로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가 있다. 중세시대와 르네상스를 잇는 최초의 거장 음악가로서 발라드와 같은 세속 노래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으며, 그가 작곡한 노트르담 미사는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교회음악으로 평가된다.(감상의 예 5-2)


 한편 아르스 노바와 비슷한 시기인 14세기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트레첸토(Trecento) 악파로 불리는 일군의 음악가들에 의해 다성의 세속 노래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이들 트레첸토의 노래는 궁정에서 불리던 것으로 아르스 노바의 영향을 받았지만 보다 풍부한 선율을 구사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다리, 최초의 거장 기욤 드 마쇼


감상의 예 5-1)

페로탱의 3성 오르가눔 '주 나심을 찬양하라'

https://youtu.be/mNMQu5LXaeI



감상의 예 5-2)

기욤 드 마쇼의 3성 롱도 '나의 시작은 나의 끝이니'

https://youtu.be/QvT1XHUj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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