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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Feb 24. 2022

Almost Christian(거의 기독교인)

- 밤과 꿈의 신앙 에세이(9)

 언젠가 개신교 계열의 케이블 TV에서 한 유명 목사님의 주일 설교 말씀을 들었다. 그때 'Almost Christian'이란 용어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이를 번역하여 '거의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거의 기독교인'이라니, 얼핏 듣기에 이 말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덜 된 기독교인'이라는 의미이다. 이럴 경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해석이다. 설교를 하는 목사님께서도 그 반대되는 뜻으로 '참된 기독교인'을 언급한 것을 두고 볼 때 '거의 기독교인'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과 잘 부합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이 바로 예수를 닮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거의 기독교인'이 주일 설교의 내용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용어의 뜻을 다르게 생각해 보게 된다.  목사님의 설교에 교인들의 나태해진 신앙생활을 독려한다는 의도가 크겠지만, '참된 기독교인'에 반하여 믿음의 방향을 잃은 양들에 대한 질책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의 기독교인'이라는 말에는 '덜 떨어진, 혹은 거짓된 기독교인'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교회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의 주객이 바뀌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보다는 우리의 생각이 앞서 자신과 공동체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신앙이 올바르게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개인이 가진 신앙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경험과 신념이 덧씌워진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에 신앙의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은 선교를, 봉사에서 신앙생활의 보람을 찾는 사람은 봉사를 신앙의 전부로 착각하는 잘못을 고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잘못이 본인에게서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마구 재단하고 판단해 자신만 아니라 신앙 공동체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신앙은 신앙 공동체 바깥의 사람에 대해서는 교회가 지나치게 편협하고 배타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내가 아직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십 대에 경험했던 일을 예를 들어 보자. 아직 종교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영적인 문제에 목말랐던 그 시절에 대학 선교를 하던 사역자(그 사람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와 기독교와 성경에 대하여 좀 더 알고자 만남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하필 그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상중에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장례를 마치고 난 뒤 어느 날 학교에서 약속을 했던 사람과 캠퍼스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거의 내 앞까지 걸어와서는 갑자기 옆으로 몸을 돌려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내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인데 이를 헤아려 살필 자세가 안된 사람이 무슨 선교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말인가.

 물론 극단적인 예이지만 우리 기독교인 중에는 이와 같은 오만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다.

 기독교 특유의 구원론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기독교인으로서 구원의 확신이 지나쳐 교회 밖의 세상에 대하여 배타적인 태도를 보여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면, 그것을 신앙으로 해서 세상으로부터 받는 탄압이라고 호도할 것인가. 놀랍게도 이런 이치에 맞지 않은 태도를 참 신앙이라고 믿고 있는 교인들과 참 신앙이라고 말하는 목회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세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는 기독교적 구원을 기독교인으로서 부정할 수 없지만, 다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구원 사역의 대상인 교회 밖의 사람들을 교회와 분리하는 태도는 선교를 교인의 사명으로 가르친 그리스도의 뜻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 최고의 가치인 사랑에도 위배되는 이런 편협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을 '덜 떨어진 기독교인' 혹은 '거짓된 기독교인'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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