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차분하게 내리는 빗소리는 봄이 오는 소리다. 차분하게, 봄은 그렇게 찾아온다.
문득 꽃망울을 터뜨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봄인 듯싶지만 봄은 기나긴 겨울을 견디며 자신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내리는 이 비가 그치면 오래지 않아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던 봄이 색색으로 화려함을 자랑하며 성큼 우리의 곁으로 다가설 것이다. 이미 남쪽 지방에서는 군데군데에서 꽃봉오리가 성급한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이 비가 그친 후 찾아온다는 꽃샘추위도 자연의 순행을 조금 늦출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막아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 비가 오늘따라 정겹게 느껴진다. 맑은 날 희붐한 달빛으로 밝히던 마음의 영창(映窓)을 비가 촉촉이 적시고 흘러내릴 때 봄기운은 이미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밤에 듣는 빗소리 하나로도 내 마음은 이미 봄기운에 빠져 가망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비가 그친 뒤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올라, 빗물을 머금고 한층 가깝게 다가올 봄을 느껴 보고 싶다. 취미로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야산이야 성에 차겠냐마는 산을 오르는 묘미가 반드시 몇 시간을 걸려 힘들게 산 정상을 오르는 데 있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높이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감성이 풍부한 산행을 원한다. 숲 속에서도 양지바른 오솔길을 걸으며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나무 이파리나 풀잎에 눈길을 주자. 눈에 비친 그들에게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그늘진 숲에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름 모를 야생화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 세밀화가 한수정은 '하루 5분의 초록'이라는 이름의 책에서 "내 주변의 자연과 만나기 위한 첫 번째 단추, 그것은 도시의 속도에 길들여진 나의 속도를 늦추고 잠시나마 멈춰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네에 야트막한 야산조차도 없을지라도 자연을 벗할 수 있다. 도심에서도 아름드리 가로수가 있고, 아파트 단지마다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봄이 되면 공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과 어울리는 참새와 직박구리와 같은 텃새의 지저귐, 그리고 개미와 무당벌레의 활발한 움직임과 제비꽃과 나리과 식물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오래지 않아 사람의 마을에서도 개나리와 산수유, 그리고 뒤를 이어 벚꽃의 자태를 통해 봄의 절정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자연과의 작은 교감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리는 비가 그치면 아직은 스산하고 쓸쓸하기만 한 숲 속에도 봄이 찾아와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생기를 더해 갈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는 일탈을 경험할 때가 있다.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는 기상 이변보다도 더 아프게 이런 일탈을 경험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겨울이었다. 남한산성 산행을 마치고 하산길에 들른 식당에서 홀로 외롭게 피어난 개나리 한송이를 보게 되었던 것이. 언론에서 접하는 어떤 환경 뉴스보다도 이 철 모르는 꽃 하나의 일탈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지구 온난화로 일찍 기온이 올라 나타난 일이다. 개화에 적당한 기온에 다다라 꽃을 피웠으니 개나리의 입장에서는 일탈이랄 것도 없이 순리에 따른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자연의 조화를 깨뜨린 사람에게 있다. 식당 앞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외롭게 피어난 개나리꽃을 보고 흥미롭다는 듯이 한 마디씩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흥미에 그칠 일이 아니라, 생태 균형이 깨어진 결과로 이 불균형은 사람의 생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어김없이 봄은 왔다. 그리고 비가 걷히면 봄의 기운은 완연해져 갈 것이다. 겨우내 잠들었던 사물이 소생하고, 세상은 생명의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숱한 생명들이 내지르는 아우성, 이 벅찬 환희에 우리도 동참하자. 우리 또한 생명을 가진 존재이므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비틀어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민감한 생태 감수성으로 무장하고 자연으로 향하자. 생태 균형의 복원에 우리, 나아가서 지구의 미래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