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잔인한 달?

by 밤과 꿈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둔감한 뿌리를 흔들어 깨운다.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고

대지를 망각이라는 눈으로 감싸고

어린 생명을 마른 구근으로 키워냈으니.


엘리어트(T. S. Elliott)의 시 '황무지'의 유명한 첫 부분이다.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는 워낙 많이 인용되어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아직 이 시를 몰랐던 어릴 때에는 하필이면 예쁜 꽃들이 수를 놓은 듯 세상을 온통 뒤덮은 이 아름다운 달을 잔인하다고 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사실 이 시는 20세기 물질 사회에 대한 문명 비판의 내용을 가진 시로서 현대 사회를 진정한 의미의 생명력을 상실한 황무지로 규정하고, 이처럼 정신적인 고결함이 사라진 황폐한 땅에서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이 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시인 것이다.

이러한 이 시의 이해나 전후 맥락에 대한 숙고도 없이 무분별하게 인용되고 있는 이 문장은 이맘때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을 두고서도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엘리어트 자신이 스스로를 일컬어 "정치적으로는 왕당파, 종교적으로는 청교도"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현대문명을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고, 소비적이며 도덕성이 결여된 타락한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각으로도 엘리어트가 가진 현대문명에 대한 인식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엘리어트가 살았던 시대와 비교할 때 물질주의가 더욱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어트가 현대 문명을 비판하기 위하여 봄에 피는 꽃을 시에 끌어온 것이 아니더라도 이제 피어나는 봄꽃을 볼 때 반가운 마음과 함께 애잔한 마음 또한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공해에 시달려 건강을 위협받듯이 식물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공해라면 매연과 같은 대기 오염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사람과는 다르게 식물에게는 대기오염보다는 빛의 공해가 더 심각한 것이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낮밤에 따라 휴식이 필요하듯 식물도 낮에 생명 활동을 하고 빛이 사라진 밤이면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로등과 차량의 불빛 등 사람에 의해 밝아진 밤은 식물의 생명 활동을 교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만일 사람이 식물의 입장이었다면 밤과 낮 구별 없이 밝은 환경 깨문에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극심한 불면증에 정신 착란을 일으켰으리라. 흔히 크리스마스가 되면 음식점에서 살아있는 정원수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는 꼬마전구로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겨울을 맞아 휴면에 들어간 식물에게 전달되는 전구의 열기는 식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말 못 하는 식물이지만 받는 스트레스가 심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전구를 치우지 않고 일 년 내내 불을 밝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와 같은 빛의 공해는 비단 식물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곤충에게는 주광성(走光性)이라는 특성이 있다. 주광성이란 생물이 빛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성질을 말한다. 곤충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여름이면 빛을 향하여 투신하는 나방과 같은 곤충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 곤충에게 큰 문제가 있어 생명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빛이 있어 빛을 향할 따름이다.

우리가 산속의 자연휴양림을 찾는 것은 야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복잡한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까이에서 생활하고픈 욕구가 있어서이다. 그러나 이미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진 우리는 최소한의 불편조차 감내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편리를 위해 자연의 불편, 어쩌면 생존과도 직결된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인 것이다. 중부지방인 서울에서도 일조량이 풍부한 곳에서는 갖가지 꽃이 활짝 폈다. 오래지 않아 서울 전역에서 꽃들은 만개할 것이다. 이곳 산자락에서도 머지않아 꽃망울을 터뜨릴 태세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 사람들이 보고 즐기라고 꽃을 피우고 새싹이 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자신들의 생명 활동인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필요와 목적에 대하여 객관적인 시선과 사고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의 동료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꽃 피는 사월,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엘리어트의 시와 함께 해 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