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의 최고 기온이 섭씨 23도라고 한다. 야외 활동으로 주말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온도라고 할 수 있다. 다사로운 햇살과 바야흐로 절정에 도달한 봄꽃의 개화로 봄은 찬란하다. 만개한 봄꽃의 풍경이 마치 장날의 풍경처럼 요란하고 소란스럽다. 한마디로 생명력이 넘치는 풍경인 것이다.
마침 바깥에 머물고 있던 딸내미가 카카오톡에 날씨에 대하여 언급한다.
"완전 초여름 날씨야."
약간은 과장된 말이겠지만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에 우리의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했으니 초여름의 더위를 몸이 먼저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의 몸도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회복한다. 이런 환절기에 곧잘 걸리는 감기 또한 환경의 적응에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사가 모두 그저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산자락 길을 걸어 관악산 줄기에 오르면 아직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곳은 아직도 봄이 미처 도착하지 못했나 싶다가도 겨우내 메마른 낙엽 사이로 개미와 같은 곤충들의 바지런한 움직임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봄에 머물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좁은 등산로를 따라 햇살을 받고 앙증맞은 노란 꽃잎을 틔운 양지꽃 무리에 꽃등애와 작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봄의 시간에 속해 있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봄은 움직임으로도 온다. 겨우내 얼어붙어 생명을 감지할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던 땅에서 오히려 왕성한 생명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주의력을 집중할 때 가장 낮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봄은 소리로서도 온다. 이맘때 동네 야산에라도 올라가면 봄을 노래하는 산새들의 정겨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봄은 이들의 짝짓기를 위한 계절이기도 한 것이다. 혹시 물웅덩이라도 있는 곳이면 개구리의 짝을 찾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봄을 찬란하게 수놓는 꽃도 마찬가지,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인 것이다. 번식과 생명의 유지를 위해 식물은 화려한 꽃으로 치장을 한다. 마치 미혼인 사람이 이성과 데이트를 하거나 맞선을 볼 때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을 부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봄꽃이 화려함을 자랑할 시간도 오래지 않아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봄은 싱그러운 신록의 시간을 맞이하여 새로운 봄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할 것이다.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봄이 머물 것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이 황금 같은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일찍 무더운 여름이 찾아온다는 데에 아쉬움이 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 봄이 찬란한 까닭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생명력이 그치지 않고 약동할 때 그 순간은 찬란하다. 자연과 달리 오래 부모의 보호 아래 머물다 비로소 자신의 삶을 열어가는 이십 대의 젊음이 찬란한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많이 어설프고 쉽게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이 시기를 한 사람의 생애에서 황금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때야말로 주체하지 못할 만큼 넘치는 생명력으로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계절이 교차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찬란한 생명의 시기가 무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이토록 찬란한 봄날의 짧은 한 때만이 우리에게 허락되듯이 우리 자신의 생명도 유한한 이상 찬란한 젊음도 어김없이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또한 그와 같은 상실의 시간을 길게 보낸다. 그러나 이 상실을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릇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겪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온전히 봄이 찾아온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숲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생명의 분주한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듯이 그동안 일상에 쫓겨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우리 삶의 본질적인 의미에 주의력을 기울인다면 신체적인 노화를 떠나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할 생명력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를 우리 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 즉 경쟁과 시기, 미움과 같은 갈등을 버리고 사랑과 같은 삶의 본질을 되찾을 때 우리의 시간은 오랫동안 찬란할 것이다. 이토록 찬란한 봄날의 한 때에 숲 속을 걸으며 해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