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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pr 25. 2022

전성기 바로크 음악의 전개 양상

- 새롭게 읽는 서양 음악사(8)


계몽주의 시대의 음악적 혼재


 음악사에 있어서 바로크 음악은 1600~1750년의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여기서 굳이 '음악사에 있어서'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장르사에 있어서 바로크 음악의 연대기가 예술 일반의 연대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바로크 시대뿐만 아니라 음악이 인근 예술을 선도하는 위치에 이르게 되는 낭만주의 시대 이전까지 음악은 예술 사조의 변화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분야였다.

 1750년이라는 해를 주목해 보자. 어떤 예술 사조라도 그 연대가 이토록 정확하게 기술되는 경우를 달리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음악사에 있어 바로크 시대만큼은 그 마지막 연대를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1750년은 흔히 우리가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죽은 해이다. 정확하게는 바흐는 1750년 7월 28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사망했다.

 바흐가 사망한 해를 바로크 음악의 마지막 지점으로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바흐의 위대함을 뜻하는 것이다. 바흐는 바로크 음악의 전성기에 활동하면서 유럽 각 지역의 음악 스타일을 흡수, 자신의 스타일로 완성하면서 장르의 치우침이 없이 폭넓게 음악을 작곡했다. 말하자면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것이 바흐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연대기 설정으로 별다른 이의가 없을 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 바흐는 두 번의 결혼으로 모두 20 명의 자식(10 명은 어려서 사망)을 낳았다. 그중에서 장남인 빌헬름 프리드만 바흐와 칼 필립 임마누엘 바흐, 그리고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가 음악사에 이름이 기록될 만큼 음악가로서 명성을 쌓았다. 물론 이들은 아버지 바흐 생존 시에도 음악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들의 음악 스타일을 일컬어 바로크 음악과 고전주의의 사이를 연결하는 로코코 혹은 갤런트 양식, 감정과다 양식 등의 이름으로 규정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18세기에 나타난 여러 예술 사조의 혼재는 비단 음악 만의 현상은 아니었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그 시기가 뒤처진 만큼 혼재의 양상이 광범위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아버지 바흐의 사망 시기를 바로크 음악의 종국으로 규정하게 되면 음악사를 통시적으로 기술하기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유럽의 한 음반사에서 '계몽시대의 음악'이라는 제목의 전집 음반을 출반한 적이 있었다. 계몽주의의 시대, 즉 18세기의 음악을 선별해서 구성한 것인데 바로크와 로코코, 전기 고전주의, 그리고 빈 고전주의의 음악을 30장의 CD에 망라하고 있다. 그야말로 장대한 구성으로 한 시대의 음악 흐름을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사회사에 적용될 시대 구분을 그대로 음악사에 적용, 기술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바로크의 전성기에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지역에 따라 발전된 음악 양식과 음악가들, 그리고 이를 집대성한 바흐의 음악을 언급하여 바로크 음악의 이해에 접근키로 한다.


오페라, 국제 양식으로 자리 잡다


 앞선 장에서 1600년 경 이탈리아 남부의 피렌체, 만토바 등지에서 오페라가 탄생되었으며, 오페라 최초의 대작곡가로 베니스 악파의 몬테베르디가 있었다고 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나폴리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나폴리악파에 의해 오페라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이 분위기를 집중시키기 위해 오페라의 공연에 앞서 연주되던 신포니아(sinfonia, 이후에 서곡으로 정착)가 작곡되었다.

 또한 오페라의 성격에 따라 구별되는 양식이 정착하게 된다. 그중에서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는 심각한 내용을 가진 오페라로서 극적인 요소보다는 음악에 중점을 두게 된다. 그래서 아리아를 부를 때 연기와 같은 극적인 요소가 잠시 중단되는 오페라의 모습이 이때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오페라 부파(Opera Buffa)가 있어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로는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60~1725)와 지오반니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 1670~1747)와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가 있으며, 대표적인 오페라로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여인 그리셀다를 소재로 한 오페라 세리아로서 스카를라티와 보논치니가 각각 작곡한 그리셀다(Griselda)와 오페라 부파로서는 지금도 인기가 있어 자주 연주되는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가 있다. (감상의 예 8-1)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초상


 오페라 자체가 극적인 요소가 강한 장르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음악적인 면을 강조하여 발전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6세기 말부터 오페라를 종합예술로 인식하고 발전시켜 나가고자 했다. 특히 이때부터 프랑스의 오페라에는 음악 이외에도 무용이 오페라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리 잡게 된다. 낭만주의 프랑스 오페라에서 보다 상세하게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 오페라의 이런 경향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후기 낭만주의의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탄호이저'에는 드레스덴 판본과 파리 판본이라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원래 오페라 '탄호이저'는 바그너가 드레스덴의 작센 궁정 가극장 카펠 마이스터(궁정 악장 혹은 지휘자)로 있으면서 작곡한 오페라이지만 드레스덴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에 가담, 지명수배자가 되어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그 후 이 오페라는 파리에서 처음 무대에 올리게 되는데 이때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따라 오페라에 발레를 첨가하게 되어 파리 판본이 따로 존재하게 된 것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오페라에 대해서는 이처럼 이후의 특징이 바로크 시대에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기로 한다.


 한편, 음악사적으로 프랑스 오페라의 영향력이 영국의 오페라보다 큰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바로크 시대에 기억할 만한 작품과 작곡가는 오히려 영국에서 나왔다. 영국의 바로크 오페라는 연극적 요소가 보다 강한 특징을 가지고 발전했다. 원래 영국이 연극이 발전한 곳이기도 했지만 예로부터 음악극에 있어 가면극이 정착되어 있었던 이유에서였다.

 지금도 기억되는 영국의 오페라 작곡가와 작품으로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이 작곡한 디도와 아이네아스(Dido and Aeneas)가 먼저 떠오른다.

 헨리 퍼셀은 오페라뿐만 아니라 100 여곡이 넘는 성악곡과 오르간을 비롯한 다양한 기악곡을 남긴 영국의 초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거장이었다.

 그리고 바로크 음악의 전성기에 영국에서 오페라를 화려하게 꽃 피운 작곡가로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이 있다. 헨델은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독일인이다. 영국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작곡가라고 생각하겠지만 귀화라는 개념이 없었던 만큼 그의 이름을 독일식으로 표기했다. 헨델의 작곡은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그의 음악적 본령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퍼셀의 사후 이탈리아 오페라에 잠식되었던 영국의 오페라 무대는 헨델의 등장으로 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헨델은 영국에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을 뿐만 바로크 음악의 전성기에 활동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합창 음악의 대가였던 헨델은 오페라에 합창을 적극적으로 도입, 보다 극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했으며 복잡하지 않고 명확한 선율 등 화성과 선율의 발상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헨델은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지금도 자주 무대에 올려지며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는 리날도(Rinaldo), 세르세(Serse)와 같은 오페라가 있다. (감상의 예 8-2)


 끝으로 유럽 사회의 주요 국가 중 하나였던 독일의 오페라 상황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해 보기로 한다. 독일은 종교개혁에 뒤이은 30년전쟁의 혼란기를 겪었던 데다가 이에 따른 경제적 곤란이 있어 오페라와 같은 사치스러운 음악이 발전할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 독일 최초의 오페라가 하인리히 츠에 의해 작곡된 '다프네'라는 기록이 있지만 악보도 남아있지 않다.

 독일의 오페라라고 하면 곡보다는 오페라 극장이 먼저 떠오른다. 독일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선제후가 통치하는 작은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에 나라마다 궁정 악단과 궁정 가극장이 있어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지금까지도 궁정 가극장 시절부터 남아 4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가극장들이 있다. 독일의 4대 가극장 중 세 곳인 베를린 국립가극장(프로이센 왕국의 궁정 가극장이었다), 드레스덴 국립가극장(작센 공국의 궁정 가극장), 바이에른 국립가극장(이에른 왕국의 궁정 가극장)과 바이마르 국립가극장(바이마르 공국의 궁정 가극장)이 여전히 왕성하게 무대를 운용하고 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1678년에 설립된 함부르크 국립가극장은 최초의 근대적 대중 가극장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4대 가극장의 하나인 이 대중을 위한 가극장이 궁정 가극장이 넘쳐나는 독일에서 탄생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오페라는 최초의 발상지인 이탈리아 남부를 벗어나 국제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추어 상이한 발전을 이루어갔지만 오페라의 대사와 아리아의 가사는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졌다. 아마도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이탈리아어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 이는 오페라에서 이탈리아가 가지는 영향과 권위가 음악 선진국의 이미지를 가진 이탈리아의 위상과 함께 한 결과라고 하겠다.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새로운 종교음악의 탄생

 

 종교개혁과 이에 따른 개신교 음악의 대두는 가톨릭 교회의 음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소박하고 간결한 선율의 개신교 음악에 비해 라틴어를 사용한 가톨릭 전례음악의 틀에 박힌 규범성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음악 중 하나가 오라토리오(Oratorio)이다. 오라토리오라는 것은 원래 교회나 수도원의 기도실을 뜻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음악으로서의 오라토리오는 규범에 얽매인 미사와 같은 전례음악에서 탈피할 의도로 탄생된 음악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마드리갈의 자유롭고 극적인 화성을 도입했고, 가사 또한 라틴어 외에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등 전례의 형식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라토리오의 발달은 오페라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어 점차 신포니아(서곡의 전 단계), 레치타티보(Recitativo, 서창), 아리아(Aria, 영창)와 같은 오페라적인 요소를 도입하게 된다. 다만 오라토리오의 내용은 성경에서 가져왔기에 오페라처럼 무대 연출과 의상 및 분장, 연기와 같은 연극적 요소는 없이 노래만 불렀다. 그렇지만 오라토리오는  극적 줄거리를 가진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어 전례음악에는 적합지 않아 오라토리오는 종교음악이지만 전례음악은 아닌 것이다.

 17세기 초창기 오라토리오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지아코모 카리씨미(Giacomo Carissimi, 1605~1674)가 있고, 카리씨미의 스타일은 프랑스의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 1634~1704)에게 전해졌다. 샤르팡티에는 오페라 작곡가로도 유명했다.


 오라토리오는 가톨릭 교회의 음악으로 출발했지만 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곳은 독일, 영국과 같은 개신교 지역이었다.

 먼저 독일에서는 18세기에 오라토리오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오라토리오와 같은 성격을 지닌  히스토리아(Historia)라는 장르가 정착한 상태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가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tz, 1585~1672)였으며, 쉬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크리스마스 히스토리아'와 '부활절 히스토리아'가 있다. (감상의 예 8-3)

 글의 구성상 하인리히 쉬츠에 대하여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쉬츠는 바흐 이전에 독일에서 활동한 최고의 종교음악 작곡가로서 가볍게 넘어갈 수도 없는 작곡가이다.
 쉬츠는 젊어서 이탈리아의 베니스로 유학을 가서 지오반니 가브리엘리에게서 수학, 독일의 다성적인 합창 양식에 이탈리아의 극적인 콘체르토 양식을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
 대표곡을 쉽게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합창곡을 남겼지만 굳이 대표곡을 꼽으라면 다윗 시편 곡집,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부활절 오라토리오,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 누가와 마태 등 수난곡이 있다.
 바흐의 위대한 성악 음악 유산은 쉬츠가 이룬 이 분야의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인리히 쉬츠의 초상

 그리고 수난곡(Passion)은 예수 수난을 내용으로 한 곡으로 이를 주제로 한 음악은 중세 시대로부터 꾸준히 작곡되었다. 그러나 바로크 양식으로서의 수난곡은 오라토리오의 형식을 지니고 있어 예수의 수난을 내용으로 하는 일종의 오라토리오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쉬츠와 바흐가 있으며, 특히 바흐의 마태수난곡요한수난곡은 예수의 수난이라는 장엄한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표현한 위대한 음악 유산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감상의 예 8-4)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오라토리오라면 영국에서 활동한 헨델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에서 오페라로 대성공을 거둔 헨델이 다음으로 눈을 돌린 장르가 오라토리오였으며 오페라에서 거둔 성과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위치에 도달한 오라토리오 작곡가라고 할 수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대중적으로도 익히 알려진 메시아와 함께  여전히 인기가 있는 유다스 마카베우스, 삼손, 솔로몬, 수산나 등이 있다. (감상의 예 8-5)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퍼셀에게서 이어진 영국의 합창 전통과 독일 전통의 대위법이 결합된 것이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


 칸타타(Cantata)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알레산드로 그란디(Allessandro Grandi, 1586~1630)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바로크 시대의 소나타가 고전주의 시대의 양식인 소나타의 의미와는 달리 기악 앙상블을 뜻하는 것처럼 칸타타 또한 소규모의 실내 성악곡을 지칭하던 용어였다. 초기에는 이탈리아어를 가사로 하여 세속적인 내용을 가진 음악이었지만 이후에 종교적인 내용도 가사로 채택, 세속 칸타타교회 칸타타로 정착하게 된다. (감상의 예 8-6)

 자유로운 형식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합창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칸타타라면 바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작곡가인데 이는 다음 장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이외에도 기존의 성악곡인 미사와 레퀴엠, 베스퍼(저녁 기도)도 여전히 성행했고 심지어는 모테트도 작곡되었다. 특히 베스퍼로부터 독립적인 악곡으로 분리된 마니피카트(Magnificat)는 바로크 시대의 시대 양식이 된다.


바로크, 건반 음악이 발달하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 쳄발로가 통주저음을 구성하는 악기로 등장함에 따라 건반악기는 그 중요성이 증가하게 된다. 이때의 건반악기라면 중세로부터 유일하게 교회 내에서 허락된 악기인 오르간을 비롯하여 쳄발로(클라브상,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가 있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가정용 악기인 버지널이 인기가 있었다. 이들 악기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독주곡 또한 증가하게 된 것이다.

 건반악기의 발전과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의 급증은 전 유럽적인 현상으로 건반음악으로 이름을 남긴 작곡가가 많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먼저 바로크 초기의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가 있었고,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Domenico Scarlatti, 1685~1757)에 이르러 건반악기(쳄발로를 위한 음악이지만 고전주의에 이르러 피아노로 연주)를 위한 (바로크)소나타 양식을 확립한다. (감상의 예 8-7)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쳄발로를 위한 음악이 많이 작곡되었지만 이탈리아와는 다르게 모음곡 형식의 곡이 성행했고,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프랑수아 쿠프랭(Francois Couperin, 1668~1733)이 있어 250 여 곡의 쳄발로를 위한 소품을 작곡했다. (감상의 예 8-8)


 독일의 건반음악은 지역에 따라 발전 양상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독일의 중부와 북부가 개신교 지역으로 예배에 오르간의 도입이 적극 권장되고 있었던 반면, 가톨릭 지역인 독일의 남부에서는 오르간보다는 쳄발로가 그 사용에 있어 우세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개신교 음악의 중심으로서 독일에서는 오르간 음악의 약진이 돋보였으며, 많은 작곡가들이 있었지만 단연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감상의 예 8-9)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초상


콘체르토 그로소, 기악의 발전을 보여주다


 앞선 장에서 간단히 언급했지만 콘체르토 양식은 성악에서 유래하여 기악 음악에 도입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성악 위주의 음악 현실에서 기악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른 측면으로는 인성(人聲) 만이 신의 뜻에 부합된다는 중세시대 교회의 권위로부터 탈피하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콘체르토 양식이 성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고전주의 시대에 양식적으로 확고한 모습을 갖춘 협주곡의 카덴자가 오페라의 아리아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온전히 독주 악기가 분리되지 않은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당연히 오페라가 기원했던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주요 작곡가로는 아르칸젤로 코렐리 (Arcangelo Corelli, 1653~1713), 지우세페 토렐리(Giuseppe Torelli, 1658~1709), 토마소 알비노니(Tommaso Albinoni, 1671~1750) 등이 있다. (감상의 예 8-10)

 콘체르토 그로소는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에 이르러 점차 독주 악기가 부각되어 고전주의 협주곡 양식으로 가는 중간 양식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비발디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곡으로는 유명한 '사계'와 '조화의 영감' 등이 있다. (감상의 예 8-11)

안토니오 비발디의 초상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향하여


 이상 바로크라는 시대의 음악을 언급하면서 어쩔 수 없이 빠뜨리거나 충실하게 언급하지 못한 작곡가들이 많다. 음악사의 큰 흐름을 따르다 보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 장에서 언급된 작곡가들도 언급된 특정 장르에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거의 전방위적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남겼다. 그렇지만 이를 모두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붉은 머리털의 신부'라는 별명을 가졌던 비발디의 예를 들더라도 콘체르토 양식뿐만 아니라 주옥같은 성악곡을 남겼으며, 심지어 오페라까지 작곡했다. 그러나 음악사적으로 비발디는 콘체르토 양식 발전에 기여한 것이 대표적인 업적일 따름이다.

 바로크 시대의 거의 모든 음악 양식은 바흐를 향하고 있다. 여기서 굳이 '거의'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바흐가 오페라는 전혀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페라 이외의 장르에 있어 바흐는 국제적인 양식의 경향을 흡수, 바로크 음악을 완성했다. 음악에 있어 바로크 시대의 종지를 왜 바흐의 사망 시기에 맞추는지, 왜 그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지 다음 장에서는 바흐의 음악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감상의 예 8-1)

페르골레시의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 중에서 세르피나의 아리아  '성질 급한 당'.

코믹한 풍자극으로 아직은 오페라의 길이가 짧고 규모도 크지 않다.

https://youtu.be/Aq3Ujw-z-Ak


감상의 예 8-2)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에서 알미레나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

현대적인 무대 연출이 참신하다.

https://youtu.be/oeGk4Y1BNNY


감상의 예 8-3)

하인리히 쉬츠의 '크리스마스 히스토리아' 부분.

https://youtu.be/Ja-sdmhek0I


감상의 예 8-4)

바흐의 '마태수난곡' 중 제78곡 '우리는 눈물에 젖어 무릎을 꿇고'.

https://youtu.be/YeFpmsfiMuk


감상의 예 8-5)

헨델의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 중에서 '할렐루야 아멘'.

교회에서 마침 송영으로 많이 불러 친숙한 곡.

https://youtu.be/mjJJHvjdyGY


감상의 예 8-6)

바흐의 세속 칸타타 '조용히, 잡담은 그치시오', 일명 '커피 칸타타' 중에서 소프라노 아리아 "아, 커피가 얼마나 달콤한지".

https://youtu.be/w8xcRYMa5V8


감상의 예 8-7)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쳄발로를 위한 곡이었고 지금은 주로 피아노로 연주되지만 원곡의 느낌은 오히려 기타를 위한 편곡에 살아있다.

그 이유는 피아노가 해머로 현을 때리는 악기인 반면, 쳄발로가 기타와 마찬가지로 현을 튕기는 악기라는 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s://youtu.be/FpxkikfFMxk


감상의 예 8-8)

쿠프랭의 클라브상을 위한 '신비한 장벽'.

https://youtu.be/syB9mxe8CHk


감상의 예 8-9)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

https://youtu.be/R3aOgFVybtg


감상의 예 8-10)

코렐리의 콘체르토 그로소 '크리스마스 협주곡' 중 3악장.

목가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음악이다.

https://youtu.be/7o6gRHY9wx4


감상의 예 8-11)

비발디의 협주곡집 '사계' 중 '봄'의 전악장.

https://youtu.be/3LiztfE1X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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