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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May 05. 2022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 밤과 꿈의 신앙 에세이(12)

 부활 신앙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오늘과 같이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여 범세계적인 종교로 반성할 수 있었던 것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한 기독교의 공인에 힘입은 바가 컸고, 하나의 전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순수하게 종교적인 면보다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말하자면 이때 이미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세력권 내에서 무시하지 못할 만큼 교세가 확장되었기에 더욱 교세를 넓히려는 기독교와 정치적 안정이라는 현실 권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생애 전부를 유대 땅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좁은 유대 땅을 넘어 유럽에까지,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가진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유대교가 유대 민족의 종교라는 점에서 유대 민족을 넘어 확장되기 어려웠던 반면,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이민족에 대한 포용력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물론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정된 것이었다고 말하고 기독교인이라면 이 말에 아무 의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이해시키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믿으라고, 믿음이 있으면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면 설득력을 잃은 억지에 가깝다. 이는 길거리에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라고 말하는 전도 방법과 똑같다. 하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교인이라면 예수를 제대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안다. 교회조차도 예수에 대한 순결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가 드물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종교로서 기독교가 형성될 당시, 그러니까 초대교회가 형성되던 때 이미 유대 땅을 떠나 유럽에 정착, 헬레니즘 문화에 익숙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있었다. 기독교의 유럽 전파를 이끌었던 사도 바울도 헬레니즘 문화가 몸에 밴, 로마 시민권을 가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 유대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민족주의와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폐쇄적인 집단이었다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보다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가 민족주의에 의해 폐쇄적인 공간에 갇혔다면 기독교는 이들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의해 유럽으로, 나아가 전 세계로 지평을 넓혀갈 수 있었다. 이처럼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의 교세 확장은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진 결과였다. 이를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의 교세 확장은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아니라도 기독교가 가진 교리가 대중이 생각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니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이었다. 종교로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같이 내세론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현세의 종말 이후에도 육신이 부활한다는 교리가 있었기에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현실의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2천 년 이상 세월이 흘러 예수의 재림을 바라보는 오늘의 마음과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에서 바라보는 예수의 재림이 사람들에게 주는 간절함은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예수의 재림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올, 그리고 와야 할 사건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신앙은 간절했다. 

 2천 년 동안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부활절로 그 의미를 기리고 있다. 그리고 예수의 재림 또한 중요한 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죽음이 전제되어야 성립한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재림은 세상의 종말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2천 년 이상 기독교가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 것은 예수의 재림과 종말, 그리고 뒤이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현실의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하는 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인내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다.


 한편, 2천 년 이상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부활의 의미도 현실 생활에 맞추어 적용,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낳고 있다. 우리가 병마와 경제적인 시련 등 개인적인 고난의 시간 속에 있을 때 부활은 개인적인 고난을 이기는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둠 속에 머물고 있을 때 부활은 새 시대를 열어가는 뜨거운 가슴들의 소명이 되었다. 이처럼 부활은 우리 삶의 기층에서 끊임없이 역사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원래 부활의 성경적 의미가 망각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독교가 종교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에는 사망이라는 전제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사망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입는 부활을 위한 전제로서 기어이 극복되어야 하는 사망의 자리를 뜻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수가 사망한 후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예수가 묻힌 무덤에서 확인한 것은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먼저 확인하는 부활의 모습은 사망의 자리를 떠나 벗어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시대적 속박, 즉 사망의 자리를 떨쳐 벗어나고자 하는 순간에 우리는 삶 속에서 역사하는 부활을 믿음으로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무덤에 머물지 않았듯이 우리 또한 생명이 없는 사망의 자리를 한 발짝 한 발짝 벗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활의 선험을 통해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라는 말을 뜨겁게 받아들이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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