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新綠)은 푸르름을 더하고

by 밤과 꿈

벚꽃이 지자 곳곳에서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여린 잎사귀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라고 생각한 지 오래지 않아 수종(樹種)에 따라서는 벌써 푸르름이 짙어가고 있다.

봄은 왜 이다지도 성급하게 우리에게서 떠나가는지...... 도무지 곁을 허락하지 않았던 첫사랑의 여인과 같다. 그래서 봄은 눈부시게 아름답나 보다. 오래 머물지 않았기에 환상도 깨어질 틈이 없이 영원히 환상으로 남는다.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언제나 애틋하듯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이 한편으로는 애틋하게 생각되는 까닭이다. 떠나가는 봄의 걸음마다 느끼는 서러움이 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서정범 교수의 수필에 '놓친 열차가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세상사의 모든 이치가 그런가 보다. 자신의 곁에 두지 못하는 모든 것이 못내 아쉽고, 종국에는 그리움이라는 뒤끝을 남기게 되나 보다.


그리움... 그것은 치명적인 자해로 마음에 남기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흔이다. 살며 그리워서 아프고, 그리움이 짙어 도무지 잊지 못할 것 같았던 일도 세월을 따라 산화되어 잊힌다는 사실이 또한 아프다. 또한 그리움의 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이유도 없다. 오래전 물건에서도 추억이 매개되어 있다면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결국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상실감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남쪽의 봄바다를 눈에 담기 위해 여행 중이다. 원래 꽃피는 3월 말에 계획했던 가족 여행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코로나 확진으로 미루다 그 절반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에 가는 길에 무리를 지어 어지럽게 공중을 맴돌고 있는 제비를 보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1980년대 초 고향을 떠나온 이후 처음 만나는 제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에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들락거리는 제비는 낯설지 않은 새였다. 흥부전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제비는 선한 이미지가 있어 제비에 대하여 해코지를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후에는 줄곧 양식으로 지은 집에 살았고, 따뜻한 남쪽의 고향을 떠난 후로는 방학이 되어 고향을 찾아도 제비를 보지 못했다. 오늘 본 제비에 대한 반가움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매개되어 있기에 생긴 감정일 것이다. 이런 반가움은 잊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감정은 흘러간 시간 속에 있었으나 지금은 잊힌 상실감과 다름없다. 물론 이런 정도의 상실감이야 치명적인 상처로 남을 리는 만무하다.


사람이 되었든, 하나의 사건이 되었든 간에 그 대상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과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는 상실감은 잊히지도 않고 오래오래 아픔으로 남는다. 사랑이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되겠지만, 높은 가치만큼이나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아프지만 잊지 못하는 그리움을 남긴다. 아프지만 그리워할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프도록 사랑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루지 못해 아플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우리 내면의 탐욕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년의 우리는 어느 정도 탐욕스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마음에 욕구가 머물고 있다는 것은 생명력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탐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늙어서 생기는 탐욕이다. 분명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곁에서 느끼기에 안쓰러운 감정이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심신이 노쇠해서 생명력이 힘을 잃어가는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자기 확인이 노탐으로 표현되는 것이리라. 그마저 사라진다면 살아가는 시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 떠나갈 봄은 분명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일 년 후에 또다시 봄은 찾아오겠지만 2022년의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봄이라는 계절이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봄이 그 계절을 살아가는 사람과 연동될 때 비로소 봄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의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봄을 마음껏 호흡하면서도 봄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 찾아온 봄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앞으로 떠나간 봄을 그리워할 수 있을 것이다. 숲이 짙으면 계곡이 깊은 법이다. 마찬가지로 떠나가는 봄은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나 봄을 살아간 모두에게 의미를 실현할 시간을 열어줄 것이다.

깊어가는 봄날, 푸르름을 더해가는 신록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