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에 가장 가슴이 벅차오르는 때를 고르라면 신록에 푸름을 더해가는 지금, 바로 5월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위(四圍)가 화려한 꽃천지를 이루는 4월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감격이 함께 한다면, 5월에는 완숙한 생명에 이를 성하(盛夏)를 향해가는, 약동하는 생명력에 감응하는 감동이 있다. 바야흐로 우리는 푸르다는 말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주 '잠시' 머물 따름이다. 안타깝지만 아름다움은 너무나 빨리 스쳐가는 기차의 기적 소리와 같다. 기적 소리의 긴 여운처럼 이미 사라진 뒤의 아쉬움을 붙들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이 이내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의 곁을 떠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쉽다. 그러나 자연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 터, 떠나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까지 더불어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의 이런 기대에 걱정을 뒤섞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맘때면 산 중턱에서 무리 지어 지천으로 피어난 아카시아꽃의 모습을 보게 된다.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꽃의 모습이 안개처럼 흐릿한 게 꽃이 아름답다기보다는 멀리서 전해오는 향기로 기억되는 꽃이다. 그리고 달콤한 아카시아 꿀로도 기억된다. 따로 아카시아 꿀을 수확할 만큼 아카시아는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종이다. 산자락 길에서 바라보는 멀리 삼익 아파트의 뒤편으로도 아카시아꽃이 무리 지어 보기에 좋다.
그러고 보니 요즘 꿀벌을 보기가 쉽지 않다. 중학생이었을 때 점심시간에 잠깐 운동장에 나와 학생모로 날아다니는 꿀벌을 낚아채 잡아도 20 여마리는 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 꿀벌을 제대로 보았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부 당국은 금년 초에서 2월 말까지 어림잡아도 70 억 마리가 넘는 꿀벌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꿀벌의 실종이 처음에는 남부지방에서 발생한 현상이었지만 이내 전국적으로 공통된 현상으로 양봉 농가에서 키우던 벌의 18%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먼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심각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 때문이라고 한다. 작년 가을에 뜻하지 않은 저온 현상으로 벌들이 일찍 월동에 든 반면, 정작 12월의 기온이 높아 금년의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게 되었던 것이 다. 이에 벌들도 기온 변화에 따라 일찍 월동을 끝내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활동하기에 적절한 기온에 도달하지 못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동사하거나 체력 고갈로 집으로 복귀하지 못했다는 것이 꿀벌 실종의 이유라고 한다.
꿀벌이 사라진 또 하나의 이유로 병충해의 피해가 극심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단다. 금년 들어 벌들의 체액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인 '응애'가 대부분의 양봉 농가에 번져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또한 기생충 제거를 위해 뿌린 살충제가 오히려 피해를 더 키웠다고 한다.
그 외 개체수가 증가하는 말벌에 의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의 하나로 언급된다.
꿀벌의 실종이 단순하게 농가의 피해로 끝나는 문제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꿀벌의 실종이 이상 기후에 그 원인이 있다면 이는 올 한 해에 그칠 문제도, 우리나라 만의 문제도 아닌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할 것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식량으로 소비되는 곡물의 90%를 차지하는 100종의 곡물 중 70종이 꿀벌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상 기후에 의한 꿀벌의 멸종이 현실로 나타날 때 인류는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상 기후가 전적으로 인간이 저지른 잘못이니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야 솔직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 피해가 인간을 넘어서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종에게 미친다는 사실에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 철없는 학창 시절에 아무 소용없이 꿀벌을 잡아다 비닐봉지에 넣어 짓눌러 죽이거나 꽁무니의 침을 뽑아 죽였던 자신의 만행에 대하여 지금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끼려고 한다. 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생각이지만.
꿀벌이 사라진 봄날의 아카시아꽃을 바라보면서 이 향기로운 꽃내음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불편하다. 짧아서 더더욱 아름다운 봄날의 한때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아린다. 오늘 산자락 길을 거닐며 하는 생각이 전혀 부질없는 생각 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