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2022년의 찬란했던 봄날...

- 산자락을 거닐며 마음 자락을 붙들고(10)

by 밤과 꿈

어느덧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서서히 봄이 떠나가고 시절이 여름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는 즈음이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낮이면 여름을 연상할 만큼 기온이 오른다. 그래도 밤낮의 일교차가 크다는 것은 아직은 계절이 봄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한낮의 기온이 상승하고 '열섬 현상'에 갇힌 도심은 한밤에도 기온이 섭씨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를 겪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진통을 경험하고서야 더위는 한풀 꺾이고, 여름은 마지못해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해마다 경험하는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문제는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열섬 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찬란한 봄날에 머무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2022년의 봄이 떠나가는 지금이 소중하면서도 아쉬운 까닭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라고 한결같은 봄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지난 세기의 말까지만 해도 황사는 걱정거리가 될 수 없었고, 황사와 미세먼지에 뒤덮여 숨쉬기조차 힘겨운 봄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더 오래전으로 돌아간다면 도시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던 봄의 모습은 아지랑이가 시야를 흔들고, 텃밭을 가꾼 동네 공터에서 지저귀며 날아오르는 종달새가 반가운 것이었다. 그리고 누나와 함께 작은 광주리와 과도를 들고, 쑥을 캐기 위해 마을 뒤 야산을 오르거나 하다 못해 철로변에 자란 쑥을 캐서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는 쑥국을 끓이거나 쑥버무리를 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어린 시절 봄에 대한 기억과 함께 한다. 지금은 쑥이라면 힘들게 뜯을 필요 없이 봄이면 동네 슈퍼에서도 쉽사리 구할 수 있고, 쑥버무리라면 시장의 떡집에서 싸게 사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만큼은 천금(千金)을 준다한들 다시는 되살리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아쉬움은 다시 오지 못할 지나간 시간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봄의 질에 대한 상실감도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면서 봄이 떠나가고 있다. 떠나는 봄이야 내년에 다시 오겠지만 2022년의 봄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맞이하는 봄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짐작할 수 없다. 예년과 같은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미세하나마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지난 2 년간 코로나로 인해 잔뜩 위축된 봄을 경험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만큼 우리는 불확실성이 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불확실성 속으로 내몰고 있는 것들, 국가 간의 패권이나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갈등과 파탄 같은 것 중에서도 훨씬 심각하고 지속적인 요소가 환경과 생태적 변화에 따른 현상 파괴일 것이다. 따라서 내년에 새로 맞이할 봄이 지금과 같으리라고 누군들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예민하다 싶은 이런 마음이 아니라도 나처럼 장년이라고 불리는 나이에 이르게 되면 흘러가는 한 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살아갈 날들보다는 살아온 날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크다.

흔히 인생 제2막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아마도 아직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활동에서 은퇴의 시기가 빨라지는 세태를 반영한 표현이리라 생각한다. 주변에서도 선배는 물론 은퇴한 친구나 후배가 여럿 있다. 금융권에 근무하다 명퇴, 두둑한 퇴직금을 받은 한 후배는 퇴직금으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도 하고, 음악을 좋아한 선배는 강사 교육을 받고 서울 내 여러 구청 문화센터에서 오페라 감상 강좌를 개설, 강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평생을 군문에서 일한 합창단의 동료 단원은 은퇴 직전에 아내 몰래 구입했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로 아내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겠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때문에 그의 꿈이 주춤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인생 제2막을 펼치기도 전에 암에 걸린 지인들도 있다. 살아온 모습이 다양하듯 은퇴 후 살아가는 모습도 다양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것보다는 남은 시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경쟁하듯 살아온 것처럼 결과만 생각한다면 남아있는 삶에 부정적인 요소를 쌓아가는 일이다.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고, 비록 병마와 싸우는 시간에 머물고 있을지라도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긍정적이면서도 소중한 마음을 담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22년의 봄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더불어 다가오는 2022년의 여름이 선물할, 벅찬 생명력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이 글을 쓰고 보니 떠나가는 봄날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참 복잡하다. 복잡한 심사에 비례하여 아쉬운 마음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만큼 나도 늙어간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하니 산자락 길을 걷는 내 얼굴에 실없는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산기슭 공원의 아름드리나무에서 생명을 노래하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환청처럼 미리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