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by 밤과 꿈

하루 종일 국내 뉴스 채널의 메인을 장식한 뉴스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날짜를 바꾸어 계속되는 뉴스에도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정도의 당락을 가늠할 수 있는 윤곽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 불확실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미국 국내의 정정불안은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상대할 각 국가의 셈법도 복잡해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선거도 아닌 남의 나라 선거에 온 나라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를 제대로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덩치가 큰 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사정에 새삼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가 조금 독특하고 복잡하다. 선거인단 제도와 승자 독식제로 요약되는 간접선거 방식은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미국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선거제도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연방국가 제도에 따라 형성되었을 선거 방식이 그만큼 큰 거부감 없이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거에서 국민의 표를 상대 당보다 더 많이 얻고도 유효한 선거인단 구성에 실패, 선거에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이 제도가 결코 합리적인 방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동안의 선거 전통에 따라 패자의 지체 없는 승복이 있어 연방국가의 안정적인 결속을 가져올 수 있었겠지만 이런 전통이 깨어졌을 때 미국의 선거제도는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그런 불길한 조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로 인한 혼란이 양당의 지지자 간의 폭력 사태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뿐만 아니라 내전의 우려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 언급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지만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미국은 이미 각 지역의 이해관계를 따라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이라는 내전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대의민주주의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선거를 통해 그들의 대표를 뽑아 국가의 운영을 맡기는 제도를 뜻한다.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공동체를 조직하고 이끌어가는 데에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이 제도가 완벽한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자는 것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은 대의민주주의가 "중간 계급, 즉 부르주아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도라고 주장"하면서 "대표를 통해서만 말해야 한다는 원칙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대표가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할 기회를 박탈한다. 그리고 사회가 발달하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질수록 대의민주주의는 근원적인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대의민주주의의 맹점을 적확하게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직능 단체의 대표를 비례대표로 국회에 영입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에 대해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결코 완벽한 제도가 아니며 사회의 각 계층의 이해를 온전히 대변하고 있지도 못하는 허점이 많은 제도인 것이다. 단지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 간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약속에 동의한 적이 없이 약속의 이행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 국가의 최고 대표자인 대통령의 경우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수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갈등 요소가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서 한번 해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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