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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Jun 07. 2022

고전주의 시대를 향하여

- 새롭게 읽는 서양 음악사(10)


음악에 있어서의 고전주의


 고전주의(Classicism)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고전, 그리고 고전적이라는 말의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전(Classic)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로서 로마시대의 귀족 계층 혹은 가장 진귀하고 값진 물건, 가장 뛰어난 예술품을 통칭하여 부르던 말이다. 따라서 고전이나 고전적이라는 말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으로서 최고의 예술적 걸작이나 문학 작품을 지칭하여 적용되었다. 또한 어떤 창작물이 고전이 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작품의 가치와 인식이 보편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전이라는 개념은 18세기에 등장한 것이었다. 18세기의 미학자이자 미술사가인 요한 요하임 빈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은 그리스 미술에서 고전미의 개념을 발견했다. 빈켈만이 플라톤의 문장과 그리스의 미술에서 발견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고요한 단순, 위대한 고요"라는 그의 말처럼 정적인 단순성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에서 고전미를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빈켈만이 그리스의 미술과 문학에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이는 당시의 합리적인 계몽시대의 시대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계몽사상의 합리주의는 예술에 있어서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빈켈만이 그리스 예술에서 발견했던 고전미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18세기 계몽시대의 예술적 경향을 예술사에서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라고 부른다. 그러나 음악에 있어서는 고전이라고 할 만한 그리스의 유산이 없었기에 19세기의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직전의 음악 경향을 일컬어 고전주의 음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요한 요하임 빈켈만의 초상


다양한 음악이 공존했던 18세기


 앞선 장에서 바로크 시대의 종결 시기를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사망한 1750년으로 언급했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1740년으로 그 시기를 앞당기기도 한다. 아마도 이때에 바로크 스타일에서 벗어난 새로운 음악 경향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시기 설정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도 바로크 스타일의 음악은 엄연히 상존하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시대 구분이 명쾌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바흐가 사망한 1750년을 바로크 음악의 마지막으로 설정한 것은 일종의 상징적 의미를 둔 것이지만 바흐가 활발하게 활동할 때 그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개성이 뚜렷한 로코코 스타일의 음악을 작곡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바로크 음악의 거장 헨델은 바흐를 더 살고 1759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바로크 시대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로코코 스타일과 전기고전파 등의 신경향 음악이 동시에 등장했다. 이들 음악의 스타일을 비교할 때 그 차이가 뚜렷해서 동시에 이들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분출하듯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음악 스타일의 발생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항상 새로운 음악을 듣기 원하는 음악 수용자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20세기를 맞이하기 이전의 모든 시대에 걸쳐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최신의 현대음악을 듣고 있었으며 새로운 음악을 끊임없이 원하고 있었다. 이 점이 우리 시대의 여건과 취향과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현대의 음악 애호가들이 주로 듣는 음악은 고전과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이다. 그다음이 바로크 시대의 바흐와 비발디, 헨델 정도.

요즘은 소스의 발달과 고음악에 대한 관심이 증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보다 확대된 것이 사실이지만 현대음악은 여전히 거리감이 있는 음악에 머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대음악을 다루는 장에서 고찰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과 같이 CD나 파일, 그리고 SNS 매체가 발달, 음악의 간접 경험과 보존이 원활하지 못한 시대에서 최신의 음악에 집착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교양으로서의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계몽주의 시대에 최신의 음악을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교양의 깊이에 대한 척도가 되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18세기의 로코코 양식의 우아함과 경쾌함


 예술사에 있어서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에서 신고전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유행했던 예술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로코코는 과도기적 양식으로 잠시 유행을 했기에 바로크나 고전주의와 같이 시대(Period)로 지칭하지 않고 로코코 양식(Rococo Style)이라고 부른다.

 건축에서 시작된 로코코 양식을 간명하게 설명하는 특징이라면 우아하고 섬세하다는 것, 그리고 경쾌한 분위기를 유발한다는 것으로 이는 바로크 양식의 장엄하고 견고한 특징과 구별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로부터 고전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의 복잡한 양상은 연대기적인 분류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불과 20년 사이에 바로크 시대가 고전주의 시대로 온전히 옮겨갔기 때문에 그 과도기적 현상이 나타난 시기를 엄격하게 특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후기 바로크와 로코코가 시기적으로 혼재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구별하여 다루지 않기도 해 연대기적 기술에 어려움이 있다. 다만 프랑스에서 절대 왕정을 구축했던 루이 14세의 죽음이 사회 분위기를 일신, 장엄하고 견고한 바로크 양식에서 우아하고 경쾌한 로코코 양식으로 예술 취향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초상


 이와 같은 로코코는 귀족 취향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왕족과 귀족의 궁정 양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르네상스적 궁정 양식과는 달리 서서히 싹트는 '부르즈와적 주관주의'와 결부된 것이기도 하다. 로코코 예술에서는 우아한 궁정의 정서와 명랑하고  해학적인 정서가 결부된 친숙한 것이었다.

 음악에 있어서도 바로크의 대위법과 같은 폴리포니 음악이 로코코에 들어서는 화성 중심의 호모포니 음악으로 대체되고, 궁정에서 살롱을 중심으로 한 수용 형태가 발달하게 된다.

 로코코 음악의 특징인 경쾌하고 우아함을 갤런트 양식(영, Gallant Style) 혹은 갈랑 양식(Galant Style)이라고 하는데 이는 오페라를 통해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그 특성이 전해졌다.

 갤런트 양식이 잘 나타나는 장르로 오페라와 발레가 있다. 오페라에 대해서는 앞서 8장에서 바로크 음악의 전개 양상을 언급할 때 많은 부분을 이미 다루었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다. 바로크와 로코코 음악은 동시에 존재한 국면으로 구별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다 밝아진 시대상의 변화와 함께 오페라 부파가 두드러졌다는 것과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서곡이 빠름-느림-빠름의 구성을 확립함으로써 기악 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로는 부라노 태생이라는 뜻으로 부라넬로(Buranello)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발다사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 1706~1784)가 있어 오페라 부파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감상의 예 10-1)

발다사레 갈루피의 동상

 

 바로크 시대의 예술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에 비해 확실히 주정주의의 기초 위에 이루어져 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의 신고전주의 예술은 주지주의적인 경향을 지녔고 보다 안정적인 정형성을 추구했다. 마찬가지로 음악에 있어서의 로코코 양식 또한 이전의 바로크 음악에 비교할 때 예술 일반의 변화를 따르고 있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예술사에 있어서 로코코 양식이 신고전주의와 대비되는 면이 있어 바로크 시대에 가깝게 이해되지만, 음악에 있어서 로코코 양식은 고전주의 음악의 개념을 따라 고전주의 음악으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로코코 양식을 이상적으로 보여주는 장르가 바로 기악곡이었다. 궁정 취향에 따라 초상화가 유행했던 것처럼 기악곡, 특히 독주곡에 대한 발전이 있었고, 바로크 시대의 트리오 소나타도 지속적으로 작곡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8장에서 언급한 바 있는 프랑수와 쿠프렝(Francois Couperin, 1668~1733)을 시작으로 해서  필립 라모

(Jean-Philippe Rameau, 1683~1764)에 이르러 건반 독주곡의 형식을 완성한다. 그러나 독주곡이라고 해도 라모의 '협주풍의 클라브상 곡집' 같은 경우 트리오 형식으로 연주, 고전주의 시대 바이올린 소나타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감상의 예 10-2)

장 필립 라모의 초상

 지금도 박하고 친숙한 바이올린 소나타들로 잘 알려진 장 마리 르클레어(Jean-Marie Leclair, 1697~1764)의 곡들도 원래 트리오 형식으로 연주되었다. (감상의 예 10-3)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와 프랑스의 갤런트 양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로코코 양식은 바로크의 양식적 특징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독일에서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변혁기의 음악가 모두가 그러하듯이 위대한 바흐의 존재는 잊혔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바흐는 생전에도 독일 내에서 그다지 알려진 존재가 아니었다. 바흐라고 하면 그의 아들들, 그중에서도 셋째 아들인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1714~1788)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미 이 시대의 바로크 양식은 구식의 것이 되었고 다감 양식( Empfindsamer Stil)이라는 일종의 감성적인 로코코 양식이 등장했다. 다감 양식이란 기악곡의 한 악장 내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다양한 리듬 패턴과 다이내믹한 선율을 가지고 감정의 변화를 나타냈다. 프랑스의 갤런트 양식과 비교할 때 역시 독일인의 성격대로 보다 심각하고 표현적 성격이 강했다. (감상의 예 10-4)

C. P. E 바흐의 초상


전기 고전파의 음악, 교향곡의 탄생


 바로크 음악으로부터 고전주의 음악으로의 이행을 주도한 것은 기악 음악이었다. 그렇다고 오페라가 위축되었던 것이다. 기교적이고 장식적인 아리아 등 성악 중심의 바로크 오페라에서 점차 기악의 비중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로크 시대에 급성장한 기악 음악이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 비로소 음악을 주도하게 됨에 따라 교향곡이라는 장르가 발달하게 된다. 그러나 종교 음악의 경우 보수적인 성격으로 해서 큰 변화가 없이 답습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음악적 양상이 갑자기 일어난 현상은 아니며 고전주의 시대를 예비한 음악 동향이 있어 이를 음악사에서는 전기 고전파(The Pre-Classic)라고 부른다. 그러나 음악사에서 고전주의 시대(빈 고전파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무게 중심을 크게 두어 전기 고전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향곡이라는 장르가 오페라의 서곡 양식에서 시작되었기에 교향곡의 역사에서도 이탈리아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곡을 썼던 음악가라면 쥬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 1692~1770)와 지오반니 바티스타 사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Sammartini, 1701~1775)가 있다.

 그러나 교향곡의 역사에서 빈 고전파 이전에 교향곡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베를린 악파만하임 악파가 있다. 프러시아 왕국의 수도 베를린은 일찍이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고 교향곡의 작곡이 이루어졌다. 베를린 악파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요한 고틀리프 그라운

(Johann Gottrieb Graun, 1703~1771)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향곡의 발전에 크게 기여, 빈 고전파에게로 연결한 것이 만하임 악파이다. 팔츠 선제후의 궁정이 있었던 만하임은 각국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운집한 음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는 음악의 작곡뿐만 아니라 연주의 질도 높아 높은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그리고 만하임의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끈 최초의 거장으로 체코계인  요한 슈타미츠(Johann Stamitz, 1717~1757)가 있어 쳄발로 주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전통에서 탈피, 최초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장이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새로운 전통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아들 카를 슈타미츠(Karl Stamitz, 1745~1801)는 2세대 만하임 악파로 부자가 교향곡의 발전을 주도했다. (감상의 예 10-5)

 그 외 크리스티안 카나비히(Cristian Cannabich, 1731~1798), 이그나츠 홀츠바우어(Ignatz Holzbauer, 1724~1783) 등의 외국인 음악가들이 만하임에서 활동했다.

카를 슈타미츠의 초상


 이처럼 음악가들이 국제적인 교류와 활동을 이어갔던 것은 음악에 있어서 고전주의 시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음악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될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 빈의 고전주의 음악이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국제적으로 음악적 교류가 활발했던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음 장에서는 유럽 최고의 강국으로 성장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국력이 뒷받침한 고전주의 시대의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감상의 예 10-1) 발다사레 갈루피의 오페라 부파 '시골의 철학자' 중에서 서곡(Sinfonia).

 빠름- 느림- 빠름의 템포형을 창안한 이탈리아 오페라 서곡은 이후에 기악, 특히 교향곡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밝고 경쾌한 갈루피의 오페라 부파에서 훗날 모차르트의 부파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등의 면모를 미리 읽을 수 있다.

https://youtu.be/ZelNuBzQ68Y


감상의 예 10-2)라모의 '협주풍의 클라브상 곡집' 중 제5곡.

 고전주의 시대 바이올린 소나타의 원형.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보면  아직 바이올린보다는 피아노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https://youtu.be/mb4irTpoBsk


감상의 예 10-3) 장 마리 르클레어의 바이올린 소나타도 원래 트리오 형식으로 연주되었던 곡이다.

https://youtu.be/8SAzN3pqYqA


감상의 예 10-4)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첼로 협주곡.

 다감 양식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https://youtu.be/j3YdRHocF4w


감상의 예 10-5)

칼 슈타미츠의 '체스' 교향곡 중 알레그로 모데라토- 프레스토.

아버지인 요한 슈타미츠가 오케스트라의 리더를 쳄발로 주자에서 바이올린을 맡은 악장이 맡는 것으로 변화를 주었지만, 빈 고전파에 이르기까지 쳄발로는 교향곡 편성에 포함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이때 지휘자의 역할은 악장과 쳄발로 주자가 나누어 맡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https://youtu.be/Jtxcccll13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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