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유시인, 중세의 판타지를 노래하다

서양 음악사를 이끈 10가지 장면(3)

by 밤과 꿈


중세시대와 단선율 세속 가창


중세시대에는 성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에 대한 찬미와 경건한 신심을 노래한 성가가 있었듯이 일상의 감정을 노래한 세속 가창 또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중세시대의 세속 가창이 일반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해 불리어지던 노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중세시대의 세속 가창은 철저하게 귀족들의 생활감정과 이상을 담고, 귀족들에 의하여 노래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중세라는 시대는 말기에 이르러 상공업의 발달로 장인과 상인 계층이 부상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성직자와 왕을 포함한 귀족의 시대였습니다. 중세의 전성기에 도시의 형성과 상공업의 발달이 있기 전까지 일반 민중의 삶은 귀족인 영주의 장원에 예속된 농노의 고된 것이었습니다. 그 삶 속에서 유흥과 여가라는 요소는 기록으로 남아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중세시대(Middle Ages)라는 용어 자체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찬란했던 고대와 인문사상의 부흥을 꿈꿨던 르네상스 시대의 사이에 끼어있는 시대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용어는 고대시대를 자신들의 지향점으로 생각했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인문사상의 부재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중세시대가 반드시 신성에 의해 인성이 부정된, 인문 정신의 암흑기였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중세의 전성기에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정신의 맹아가 이미 나타나고 있었고, 르네상스 시대의 발흥 시기가 지역에 따른 편차가 있어 르네상스 시대를 아예 중세시대에 포함시키는 학자도 있습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중세시대가 일반 민중은 물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녹록하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전쟁과 굶주림, 질병이 일상화되어 있었던 시대로 간절하게 신앙에 매달릴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삶의 고통이 상존했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부활 신앙이 가진 의미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빠른 속도로 중세 사람들의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삶의 어두운 면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장치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 필요에 따라 마련된 장치가 축제와 기사도라는 것이었고, 세속 가창도 이에 따라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세속 가창의 존재가 서양 음악사를 이끌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세시대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시대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시대의 예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세시대의 세속 가창과 음유시인


세속 가창도 그 형식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음유시인이라는 존재와 관련하여 태동기의 세속 가창만을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중세시대의 세속 가창은 11세기에 프랑스 남부에서 발생하여 13세기까지 활동했던 음유시인들인 트루바두르가 부른 칸소라는 노래가 시초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영향으로 스페인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노래로 칸티가가 있습니다.

12세기경에는 프랑스 북부에서 트루베르라는 음유시인들이 나타나 샹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독일 지역에서 미네징거가 나타나 리트라는 스타일의 가창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들 음유시인들의 가창은 13세기 초에 크게 번창하다가 말에 이르러 쇠퇴하여 사라졌습니다.

이들 세속 가창은 시의 형식을 가사로 사용한 시가였으며, 특히 칸티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음유시인들은 시를 지어 직접 노래했으며 무반주의 성가와는 달리 전속 악사를 두어 피델이나 류트, 하프 등 기악 반주를 곁들였습니다.

가사 내용으로는 주로 사랑에 대한 것으로 지고한 사랑에서부터 감각적인 사랑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느리고 장중하게 전개되는, 탄식과도 같은 트루바두르의 연가의 호소력은 가히 일품입니다.


판타지에 의존했던 중세 사람들의 삶


중세 역사의 권위자인 네덜란드의 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저서 '중세의 가을' 첫 장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지금보다 5백 년 더 젊었을 때, 모든 사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즐거움과 슬픔, 행운과 불행, 이런 것들의 상호 간 거리는 우리 현대인들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먼 것처럼 보였다."


이 말은 중세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극단이 선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것이어서 이에 따라 중세 사람들의 일상이 "치열한 충동과 열정적인 암시"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중세 사람들은 깊은 신앙에 경도되어 있으면서도 잔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녀 사냥이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모순이 존재하면서도 아무 문제를 느끼지 않았던 시대가 중세였습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이 잔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에는 자비나 용서는 개입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현실을 더욱 힘들고 비참한 것으로 만들었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중세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삶을 갈망하면서 현실의 삶에 다양한 규칙을 만들어 누추한 현실을 이상적인 것으로 꾸미고자 했습니다.

결투를 통해 명예를 드높이고자 했습니다.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기사로서 충성을 바치는 영주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사랑을 꿈꾸면서 사랑을 이상화하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음유시인의 세속 가창에서 노래되곤 했습니다.

유럽 사회를 보면 유독 축제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또한 현실의 어두운 면을 덮고 잊어버리고자 하는 집단 감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주술이라고 할지...

중세 사람들은 이렇게 스스로 판타지를 만들고 상징의 체계 속에 자신을 가두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그 시대의 문화인만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이니까요.

중세시대의 세속 가창을 음반으로 들을 때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판타지를 생각하면서 듣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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