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단다. 한동안 눅눅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마저 눅눅하게 녹아내릴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여파로 전 세계의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게 얼어붙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국고를 많이 사용한 우리나라의 사정이 더욱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벌써 치솟는 물가에 마음이 우울하다. 코로나로 힘들게 살아온 지난 2년이라는 시간과 앞으로 전개될 힘겨운 시간들이 상상 속에서 눅눅한 장맛비와 화학반응이라도 일으키는지 마음에 곰팡내가 난다. 상상이 아니라 실제 만나는 장마철의 장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우리 마음의 우울함을 씻어 내릴지, 아니면 우리 마음에 심란함을 더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묵은 마음의 때를 씻어내리는 것처럼 마음이 시원해진다.
젊어서부터 비를 무척 좋아했었다. 물론 계절은 겨울을 가장 사랑했지만. 그래도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을 헐벗고 누추한 세상의 실상을 가리는 가식덩어리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래서 차라리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리는, 휑한 바람이 더없이 춥게 느껴지는 회색 겨울이 좋았다. 거기에 더하여 축복처럼 회색 세상을 비추는, 쇠잔한 겨울 햇살의 온기를 그리워했었다. 젊은 날의 내가 고독하게 갈구했던 사랑의 모습도 그랬다.
비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러했다. 세상의 모든 가식을 벗기고 씻어내리는 빗줄기와 같은 열렬하고도 간절함으로 내 사랑이 솔직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때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지금도 내리는 비에 내 마음은 대책 없이 침수한다. 그리고 우울한 마음에서 찰랑거리며 건드리는 감정선에 무기력하게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다. 이런 내 생각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감상적일 수도 있겠다. 원래 비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드는 성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하게 내리는 비가 우리에게 안기는 상쾌함이 있다. 봄날에는 미세먼지와 황사에 찌든 대기를 말끔히 청소해 주기도 한다. 또한 비 내리는 날에 시멘트에 포장이 되지 않고 맨살인 흙을 드러낸 시골길을 걸으며 맡는 흙냄새의 정겨움이 있다. 도시에서는 골목골목까지 시멘트로 흙을 덮어 오래 잊고 있었던 감정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다.
비 내리는 날에 가까운 숲으로 가보자. 내리는 빗줄기로 해서 비로소 듣는 숲의 소리가 있다. 쏴아, 하고 싱그럽게 속삭이는 숲의 대화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의 시 '비가 오려할 때'의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라는 시구처럼 비의 손길로 해서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재잘거림을 듣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보길도에서 했었다. 전국이 태풍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겁도 없이 여름 휴가지의 하나로 보길도를 택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왔었다. 비를 맞으며 고산 윤선도 고택을 찾아가는 길이 결코 편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풍경이 주는 묘한 긴장을 잊을 수 없다.
이처럼 반가운 비가 내리는 날, 실내에서 머물지 말고 몸을 일으켜 숲으로 가자. 가서 환한 숲의 소리를 듣도록 하자. 자연과 우리가 함께 어울려 친구가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