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땀 흘려 산을 오르는 이유

by 밤과 꿈

솔직히 한여름에 동네 야산일지라도 가파른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적지 않은 고역이다. 잠시 쉬며 땀을 식힐 때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선물하는 시원함이 이를 보상한다고 해도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에는 찌는 더위에 숨이 막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흐르는 땀 때문에 칙칙하게 몸에 달라붙는 옷의 감촉이 아주 유쾌하지 못하고, 가뜩이나 더위에 무뎌진 발걸음을 힘들게 한다. 유독 땀이 많은 내가 여름에 산행을 기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대학생일 때는 무슨 마음으로 지리산과 설악산을 종주한다고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친구들과 어울려 높은 산을 찾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용하다. 땀이 많은 나로서는 여름철 등산이 그다지 마음이 동할 일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길을 나섰을 것이었다. 그래도 지리산과 같이 규모가 있는 산을 여러 날 오를 때는 견디기 힘든 무더위만 겪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산의 넓이와 깊이가 클수록 일기가 변화무쌍한 법이라 여름이라면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폭우를 만나기도 한다. 실제 어둑한 해거름에 앞사람의 흐릿한 윤곽에 의지하여 폭우를 뚫고 장터목 산장에 겨우 안착했었다. 뱀사골에서 산행을 시작했을 때 쨍했던 날씨도 그 변화가 느닷없다. 큰 산행의 보람이라면 이처럼 자연에 뒤섞여 그 일부가 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동네 인근의 야산을 오르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비록 야트막한 산일 지라도 사계절 산을 오르며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자연을 호흡하는 보람이 있다. 지속적인 산행에 따른 건강은 보너스라고 생각하자. 야산이라지만 대부분의 산이 보다 큰 주봉과 연결되어 있어 산행 능력에 따라 그 범위를 넓힐 수도 있으니 야산이라고 하찮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특히 여름에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오르는 가벼운 산행에 찾아드는 꿀맛 같은 보람이 있다. 가쁜 숨이 다리를 무겁게 하고, 흐르는 땀이 짜증스럽게 하더라도 짙은 녹음 아래 잠시 쉬어갈 때 불어오는 한줄기 기분 좋은 바람이야말로 땀 흘린 수고에 대한 보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무더운 여름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선풍기조차 없었던 시절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지 어린 날의 기억을 더듬게 된다. 물론 그 시절에는 요즘과 같이 환경오염이 심하지 않아 더위를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7월 말에서 8월 초에 겪어야 할 절정의 더위가 힘겹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목침을 베고 대청마루에 누워 틈틈이 부채질을 하면서 더위를 견뎌야 했다. 정 더위가 견디기에 힘들면 등목으로 무더위를 이겼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얼음을 띄운 수박화채와 미숫가루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얼음 장사가 수지맞는 한철 사업인 시절이었다.

그렇게 덥기는 마찬가지인 그 시절에 삐질삐질 땀을 흘리면서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청할 때,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비로소 더위를 잊고 단잠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해거름이면 더위는 기세가 한풀 꺾이고, 가족이 평상에 둘러앉아 기분 좋은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요즘과 같이 잠들 수 없는 열대야는 들어보지 못할 시절이었다.


더위가 극심해질수록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 즉 문명의 이기는 발전할 수밖에 없다. 선풍기는 써큘레이터로 발전하고, 에어컨에서 제습과 공기청정 기능이 첨가된다. 이들 문명의 이기 없이는 도저히 무더위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이들 문명의 이기로 이겨내는 무더위가 여전히 힘겹다. 그리고 자연에서 얻는 기분 좋은 쾌적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다소 터무니가 없는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부인지라 느끼는 당연한 차이가 아닐까?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이상기온도 우리 스스로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경험하는 현상일 것이다. 땀이 많은 내가 그래도 산기슭 길을 걸어 산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자연에 일체감을 느끼고, 자연이 선물하는 한줄기 보람을 느끼고자 함이다. 이런 목적의 산행이라면 굳이 시간을 다투며 정상을 오를 이유도 없다. 천천히, 충분히 자연과 교감하면서 산길을 걷는 산행이야말로 가장 큰 보람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