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반가운 날, 그리움을 떠올린다

by 밤과 꿈

비가 계속해서 내리지 않아도 물기를 머금어 눅눅한 장마철에 모처럼 쨍한 햇살의 세례를 받는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라 흔히 놓치고 마는 축복이다.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오는 맑은 하늘이 일상에 찌든 마음마저 환하게 만든다. 비록 여름의 따가운 햇살로 해서 우리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의 불쾌감을 감수하더라도 장마의 사이에 비추는 햇살의 고마움은 소중한 것이다.

모처럼의 햇살 쨍한 아침에 오늘 하루는 이 기분처럼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는 기대를 가져 본다. 그리고 이 기분에 더하여 어제 대학 후배들과의 만남이 주는 여운을 섞는다.


어제는 일 년 팔 개월 동안 이 땅에서 머물다 삶의 본거지인 미국으로 떠나는 한 후배의 송별 모임이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후배가 그곳에서 정착을 한 뒤 삼십여 년을 머물다, 자신의 반도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지방 중소기업의 제안으로 한국에 왔다가 일을 마치고 귀국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후배가 미국의 시민권자이므로 어색하지만 귀국이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나로서는 그동안 SNS로 근황과 안부를 교환하고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 처음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라 반가움이 컸다. 이제 한국을 떠나면 당분간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기에 많은 후배들이 모였다. 그중에는 대학 졸업 후 처음 만나는 후배들도 적지 않았다.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한 후배는 뇌졸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원에서 왔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질환의 후유증으로 일상의 불편을 겪는 후배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팠다.

그 외에도 흘러간 세월은 우리들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바뀐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사고와 내면 또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지, 깊은 속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래도 이 만남이 반가울 수 있는 것은 젊은 날의 한 때를 공유했었다는 동질감과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하던 지난날에는 살피지 못했던 것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살펴 그 중요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운 감정일 것이다. 그리움의 내용이 때로는 안타깝거나 아쉬운 것일지라도 사회적 지위나 명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삶의 목록임에 틀림이 없다.


햇살 좋은 날, 맑은 대기를 호흡하면서 산기슭 길을 걸어 산길로 접어든다. 오솔길 옆으로 핀 노란 애기똥풀에 다정한 눈길을 주면서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문득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기분이 상쾌하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나무 잎새 사이로 반짝이며 눈을 가볍게 자극하는 햇살을 느껍게 받는다. 땀 흘리며 느끼는 상쾌한 바람과 환한 햇살, 이 모두가 삶의 축복이다. 더불어 그리운 삶의 목록을 펼치고, 잠시 그리운 이름들을 떠올릴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그리워할 삶의 목록이 누락되거나 빈약하다면 그만큼 지나온 시간들이 삭막했다는 뜻일 것이다. 비록 아픔도 많았지만 내가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두툼한 삶의 목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께만큼이나 크고 진한 그리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오늘처럼 햇살이 반가운 날에 떠올리는 그리움마저도 훗날 그리운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