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에 부쳐
창백하다, 지난 시간이
시간 속의 내가
반백 살이 넘도록
변함없이 창백하다
모든 순간은 흘러
오늘은 어제가 되고
수많은 어제가 모여
시간들 켜켜이 쌓이지만
창백한 시간들, 이내
한숨처럼 무너져 내리고
무너진 시간 속
기억들이 모두 창백하다
무너진 시간 속
외로운 한 아이가
수국과 달리아가 탐스러운
작은 꽃밭에서,
여전히 외로운 청년이
최류가스 맵싸하고
사랑이 떠나간 길 위에서
창백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도 창백한 내 모습을
* 아르보 패르트: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그의 음악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이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