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은 나라가 온통 물폭탄으로 난리가 났었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은 물론,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생각하면 별다른 감정 없이 사실을 말하는 내가 죄스러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내가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피해자들의 아픔을 오롯이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선한 이웃으로서 누군가가 졸지에 겪는 아픔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으로라도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아픔이 매번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해마다 이처럼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가 아닌 이유로 마음에 아픔을 새기는 사람들이 생겨 난다. 그리고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충분하지 못한 대비책을 떠올리며 자연재해가 바로 인재였다고 자책한다. 물론 이와 같이 재해를 부르는 방심과 무방비가 큰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경험할 재해가 계획된 대책으로 통제가 힘드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단지 예감으로 끝나지 않고 확신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상 기온과 이에 따른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자연 현상이 지구 온난화의 결과일 터, 이에 대한 보도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구 온난화에 따른 피해 사례가 늘어나고 피해의 강도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의 속도에도 갈수록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기사를 워낙 자주 접하다 보니 오히려 그 위험성에 대하여 무감각해지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지구 환경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이에 관련한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1980~90년대에 들어서였다. 수많은 협약이 있었지만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은 움직임이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해 있었다.
지구의 환경문제를 다루기 위해 1972년에 설립된 UN 산하 전문기구인 ‘국제연합 환경계획(UNEP)’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국가 간 협약 중 1992년에 발표된 ‘리우 선언’은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환경의 훼손에 주목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개발”을 의제로 했다. 또한 1997년에 체결된 ‘교토 의정서’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의결하였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환경 협약의 하나인 2016년의 ‘몬트리올 의정서에 대한 키갈리 수정안’은 1985년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뚫린 사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몬트리올 의정서’를 기초로 환경의 변화에 따른 수정안을 내놓은 것으로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냉매로 사용되는 프레온 가스를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지구 환경에 대한 우려와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지속되어 왔지만 국가 간의 입장 차이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각국의 환경 전문가들은 환경의 파괴가 인류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더 늦기 전에 상황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환경 문제는 전문가 사이의 논의에 그칠 뿐 일상에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이 되어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할 만큼 우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난이 빈번해진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의 창궐도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 지구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가장 크게는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탄소 에너지의 사용이 급격하게 환경을 오염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은 그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림과 같은 녹지의 훼손과 습지를 사라지게 하는 간척 등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자행되는 자연의 파괴는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 피해는 자연 파괴의 주범인 인간에게로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것이다.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이 스스로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아마도 역사시대 이전부터였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에는 약한 존재였던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연을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오만에 빠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시원이 오래된 인간의 죄과를 현대에 이르러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러 날 계속 내리던 비가 그친 산자락 길을 걸어 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땅은 젖어 있고, 좁은 등산로의 초입에는 물길이 생겨 도랑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사정이 이런지라 산기슭 공원에는 인적마저 끊겼다. 역사 속에서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온 거리를 현실에서 새삼 느끼게 되는 시간이다.